가구 하나로 만드는 나무 내음 가득한 방

원목 화장대

by 이승훈
좋은 가구란 무엇인가


몇 개의 가구를 만들었더라.

목공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다. 참 많은 가구를 만들었다. 작은 서랍장부터, 협탁, 도마, 그리고 화장대까지. 이제는 하나하나 세기 힘들 정도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그 가구들 사이에서 나를 위한 가구는 하나에 불과했다. 그것도 계획에 없었던.


나의 모든 가구는 대부분 타인을 위한 가구였다. 누군가 물려받아 또 그것을 내게 물려준 30년도 더 된 나의 책상을 새로 만들자 수없이 다짐했지만, 엄마의 낡은 도마를 바꿔주는 것이 먼저였고, 같이 일하던 회사의 대리님이 부탁한 강아지 유골함을 만들어주는 게 먼저였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내 책상을 뒤로한 채 또 무엇인가 슥슥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화장대였다.

줄곧 엄마의 화장대가 신경 쓰였다. 현재의 집으로 이사오며 어디선가 주워온, 방의 분위기를 망쳐버리는 하얀색 화장대를 보고 있노라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화장대보다는 방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서랍장을 만들어달라는 엄마였지만, 문득 그런 물음이 들었다.

엄마도 여자인데, 좋은 화장대가 가지고 싶지 않을까.

그리고 그 길로 서랍장을 뒤로한 채 얄팍한 화장대 설계도를 그려 엄마에게 보여줬다. 마음에 들지만 어딘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이유를 듣자니, 화장대는 이쁘나, 이렇게 큰 화장대를 넣어두면 서랍장을 넣을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문득 뇌리를 스쳐가는 간단하고도 명료한 생각. 좋은 가구란, 내가 보기에 예쁜 것이 아닌 주문자가 보기에 예쁜 가구가 아닐까.


급하게 설계도를 수정했다. 수납과 화장대 기능 모두를 할 수 있는 것으로. 설계도를 다 그리고의 내 만족감은 아마 0에 가까웠으리라. 내게는 전혀 예뻐 보이지 않는 가구 설계도. 보여줄까 말까를 한참 망설이다 엄마에게 설계도를 건넸을 때 엄마의 반응은 가히 내가 생각한 반응과는 180도 달랐다. 너무 마음에 든다며, 언제 완성될 수 있겠냐고 물어보는 엄마.


아, 좋은 가구는 멀리 있지 않았구나.


나무는 무엇으로 할 것인가

본격적으로 가구를 만들기 전, 먼저 나무를 선택해야 했다. 물론 고급스러운 월넛과 견고한 참나무를 섞어 만들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예상한 자재값보다 몇 배 높은 자재값을 목전에 두었을 때는 여간 부담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가구 자격증이나, 짜맞춤 장비 구입에 돈을 한 두 푼 쓴 것이 아니었기에, 일반적인 소나무와 향이 좋은 삼나무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미리 뽑아둔 자재소요량대로 나무를 잘라내 바로 제작에 들어갔다.




본격적으로 제작에 들어간다

화장대의 다리 겸 수납장을 먼저 만들기로 했다. 이리저리 평을 잡아가며, 수납장의 틀을 만들고는 목심을 박아준다. 수납장의 틀은 소나무. 비교적 단가가 싸고, 일반적으로 가구에 널리 쓰이는 나무다. 수납장을 다 만든 후에는 수납장 안에 들어갈 서랍장을 만들기로 한다. 나무는 삼나무. 향이 좋아 서랍장 재료로 많이 쓰이는 나무다. 수납장을 열 때마다 나는 삼나무 향은 여간 좋은 것이 아니었다. 내 방에 있는 협탁의 서랍 역시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자신만의 삼나무 내음을 온전히 풍기고는 한다.


아쉬움을 도장으로 달래 본다


처음 월넛과 참나무로 만들고 싶던 아쉬움을 도장(색 입히는 과정)으로 달래보기로 했다. 물론 본래의 호두나무나 참나무와 같은 색이 나오지는 않지만, 그래도 도장을 하면 나름의 멋이 있다. 사실 색을 선택하는 것만 해도 굉장히 오랜 고민이 필요했다. 자칫 잘못된 색을 선택한다면, 애써 만든 가구가 원래 쓰던 하얀색 요상한 화장대보다 나으리라는 보장도 없었으니까. 한참을 고민하던 내 머리에 스친 것은 예전에 만들었던 스툴이었다. 화장대 의자로 엄마에게 선물한 것이었는데, 생각해보니 그 스툴이 참나무 색이었다. 스툴을 참고해 색을 조합해 도장을 했다. 여기저기서 색이 고급스럽고, 예쁘다며 예의상 던지는 말에 내심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사이즈 조절까지 되는 만능 수납함 겸 화장대


도장이 마르는 데에는 꼬박 하루가 걸린다. 그뿐인가. 바니쉬(가구 방수작업)도 발라주어야 하기에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완성이 될 것이다. 그대로 기다릴 수는 없으니, 다리 겸 화장대의 밑판을 만들기로 했다. 서랍장은 역시 삼나무로 하고, 가구를 만들어 나간다. 견고함을 위해 다리는 24T 두께로 제작하고, 이내 도장까지 완성하니 얼추 화장대의 모양을 잡아간다. 가구에 어울리는 손잡이도 직접 골라, 서랍에 달아봤다. 퍽 잘 어울려 기분이 좋다.


각인 그리고 잠깐의 휴식

완성되고 각인 작업을 하며, 잠시 가구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했다. 볼 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화장대였다. 설계에서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가구였지만, 막상 만들고 보니 여간 예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잠깐의 휴식을 뒤로하고 이내 마지막 제작과정에 들어간다. 거울이 들어갈 틀을 제작해야 했다.


간단해 보이는 작업에서 꽤나 오랜 시간을 보냈다. 타카를 박지 않고, 도미노(나무와 나무 사이에 목심을 껴 바깥에서 볼 때 피스 자국이나, 목심 등이 보이지 않는 것)로 작업하다 보니, 사소한 문제들이 생겼다. 결국 기존 생각했던 것보다 약간 사이즈를 줄여 제작에 들어갔다.


완성된 화장대 겸 수납장


틀에 도장을 해주고, 거울을 붙이니 드디어 완성이 되었다. 기존 설계도와는 조금 다른 것을 눈치챈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거울 위아래 전구와 옆 수납장이 없어졌다. 하지만 이 역시 처음 했던 생각을 고집하기 위함이었다.

'좋은 가구란 주문자가 좋아하는 가구다'

위아래에 전구를 달아 예쁘게 하고 싶었지만, 엄마가 그걸 원하지 않았기에 과감히 포기했다. 옆 수납장 역시 거울이 넓은 것이 나을 것 같다는 판단하에 과감히 제거하고 아예 넓은 거울을 붙였다. 기존과 조금은 달라졌지만, 예쁜 것은 여전했다.


방에서 풍기는 나무 내음

완성한 가구는 지금 안방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안방에서 수납장을 열 때마다 방은 온통 삼나무 내음으로 가득 찬다. 엄마 역시, 나무 냄새가 좋다며 아주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 가구는 단순히 가구의 개념을 넘어 내게 좋은 가구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간단하고도 단순한 명제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준 소중한 계기 같은 것이었다. 방 안에서 나는 나무 내음은 언젠가 예고도 없이 내게 말해줄 것이다.


'좋은 가구란 내가 아닌 주문자가 좋아하는 가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