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숙원
한국을 떠나면서 친구들에게 광고지 뿌리듯이 여행을 갈 거라고 선언을 했다.
꼭 떠날 것이라는 각오를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었는데
50대의 마지막 한해의 좋은 추억으로 도전으로 꼭 갈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러고 brunch에서도 떠들면...
어떻게 되는 건지...
아무튼 가고 싶다는 것보다는 떠나는 일을 해 보고 싶은 것이다.
떠나 보고 싶은데 당기는 것이 없다.
주변에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너무 많아 간접 경험으로도 충분했던 건지
여행은 아니더라도 세 나라를 다니며 생활을 하다 보니 그게 그것이 되었는지
끌리는 것을 찾기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해변가에서 휴양을 하듯이 있다 오면 어떨까 하니 모기소리가 들려오고
관광지로 유명한 곳은 사람으로 정신이 없을 것 같고...
아들이 미국 동부의 학교를 마치고 서부로 돌아오기 전에 뉴욕을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딸은 몇 해 전에 딸의 친구와 느긋하게 뉴욕을 구경했던 터라 안내를 했는데
돌아와 아들이 하는 말은
뉴욕은 미국이 아닌 것 같더라며 유명한 곳에는 중동인과 중국인들 뿐이었다고 했다.
나는 이런 복닥거리는 속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다.
생각을 쥐어짜면서 이참에 영어로 말문이 트인다면 하는 생각을 했다.
영어로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어쩔 수 없이 말문이 트이지 않을까 하는 환상으로
영어권의 나라에 한적하지만 너무 단조롭지 않은 작은 중소도시로 가 보자고 지도를 펴 들었다.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장소를 정하고 그 장소에는 어떤 볼거리가 있는지 알아보는데
내가 찾아낸 곳마다 어쩜 그렇게 구석구석 찾아다녀온 사람들이 많은지
그 장소에서 무엇을 먹고 무엇을 구경하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를 친절하게 써 주어서
거의 두 시간을 잘 찍힌 사진으로 먹고 마시고 관광을 했더니
일부러 가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한 만족감이 느껴졌다.
가보자고 시작한 일이 또 안 가도 되게끔 만들어 준 것이다.
그래도 그 속에서 지내려면 적어도 몇 마디는 영어로 자신 있게 떠들 수 있게 될 것 같아
아들에게 나의 계획을 이야기했더니 터진 웃음을 멈추지 못한다.
미국에 와서 살면서도 안 해서 못하는 영어를 여행 가서는 어떻게 가능하냐고 하는 것인데
처음 미국에 와서 몇 년은 내 영어로 살았었는데 하는 생각에 오기가 생겼다.
자립을 해야겠다고 용기를 내어 당당하게 혼자서
미국의 내 스마트폰이 조금 이상해서 봐 달라고 가려는데
아들이 걱정이 되었는지 메모지에 해야 하는 질문을 적어 줬다.
막상 매장에 들어서니 용기가 사라져 얼른 직원에게 메모지를 보여주고
직원은 다 되었다는 말을 성능 좋은 번역기를 통해서 무엇을 고쳤는지 알려 주었다.
영어로 떠들 수 있는 기회만 있으면 연습이 될 거라는 생각이었는데
나는 딱 한마디 고맙다는 말만 영어로 했다.
아들의 웃음이 들려오고 점점 더 여행은 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