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맛
아이들이 사는 미국 이곳의 김치 맛은 정말 맛있다.
내가 분석한 것으로는 한국은 맛없는 것부터 아주 고급스러운 것까지 있어서
간혹 한국을 들리는 나는 맛을 찾아내기가 어렵고 비싼 것은 너무 하다 싶은데
여기는 어딜 가도 비슷비슷한 가격이고 맛도 서민의 입맛을 겨냥해서 만드는지
내 입맛에 꼭 맞아 한국에서도 이곳의 김치 맛을 찾고 있었다.
석 달만에 이곳에 오면 냉장고가 텅 비어 있는데
아무리 지쳐 있어도 김치를 사러가는 일에는 벌떡 일어나 앞장을 서서
한인 마트의 김치를 잔뜩 사 냉장고에 가득 채워 놓으면 어떤 부자도 부럽지 않다.
한인 마트에는 반찬들도 다양하게 팔아 일본에서 못 먹은 한을 풀어 보려고
이것저것 무조건 사는데 김치 종류도 다양해서 한 번에 서너 종류를 산다.
여러 한인 마트가 있지만 딱 한 곳에서 만들어 파는 이 김치 맛은
거의 십 년 이상 길들여져서 어느 김치보다 더 맛있다고 느끼며 먹고 있다.
친정집의 김치는 거의 잊혀 맛보다는 기분만 남아 있는데
한국에서 식당의 반찬으로 나오는 김치와 비교해서도 지지 않는다.
어느 전통 있는 가정집의 정성이 가득 든 김치라면 어림도 없을 그런 맛이지만
젓갈 냄새가 나면서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가 푹 익어 벌겋게 된 김치는
내 입맛으로는 최고이면서 가격도 적당해서 마음 놓고 퍽퍽 사 먹는다.
김치와 따뜻한 밥과 김과 달걀 프라이가 있으면 최고!
먹을 것도 많은데 꼭 한 사발의 김치와 김과 달걀 프라이로 먹으며
이것이 꿀맛이라는 거구나 하면서 며칠은 이러고 지낸다.
아이들과 헤어지기 전에 꼭 해 두어야 하는 것으로
김치찌개와 김치볶음밥용으로 밥만 넣어 볶으면 먹을 수 있게 만들어 놓는 것이다.
그러려면 김치가 필요하고 그 김치는 잘 삭아야 해서
매번 사다 먹는 포기김치를 큰 통으로 한통 더 사다 놨었다.
김치찌개를 위해서 밖에 한나절은 놔뒀다가 냉장고에 넣어 두었는데
며칠이 지나서 보니 야채 서랍 위의 칸에 올려 둔 김치통에서 김치 국물이
서랍 뒤쪽으로 흘러내려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삭으라고 했던 김치가 정말 삭았다고 하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 주었는데
덕분에 떠날 준비에 바빠서 냉장고 청소를 할까 말까 했던 것을 억지로 했다.
김치볶음밥용으로 아이들이 매운맛이 생각나면 바로 해 먹을 수 있도록
1인분의 양을 나누어서 담아 얼리면서 귀여워 사진도 찍어 두었다.
가는 날이 다가오면 점점 냉장고가 썰렁해지는데 놔두어도 먹지를 않아서
떠나는 날에는 아예 온 날의 냉장고처럼 만들어 놓으려고 하니
먹을 것이 점점 줄어 정말 김치와 김과 달걀 정도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게 된다.
그래서 떠나기 전에는
따뜻한 밥에 김치와 김과 달걀 프라이로 먹게 되는데
엄청 궁상맞아 보이면서 맛도 왠지 퍽퍽하니 잘 넘어가질 않으니...
확실히 입맛은 기분따라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