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존재
마음을 쓰면서...
여유가 없어 삭막했던 삶의 부분들이
마음이나 생각을 글로 옮기면서 다른 세상을 살듯이 느긋해졌다.
아랫집 꼬마의 두 번째 생일 카드를 사면서 많은 것을 즐겼는데
이것을 그저 샀다고 일기에 쓰니 의리와 의무만 느껴진 것이
카드를 사는 기회도 얻었다고 쓰니 덕분에 경험을 해서 좋았다는 것이 되었다.
그저 말장난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런 것을 알면서도 글로 표현을 할 때 단어에 조금 사치를 부려 보면
현실이 딱딱하지만 않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어 주었다.
내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내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나를 위협하는 것의 실체를 알려고 심리학이나 정신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었다.
그때 내가 어떻게 이런 정상적인 온전한 인간으로 유지할 수 있었는지를 알았는데
그것은 손을 떨어가면서도 마음을 적어 내려갔던 것이 치료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마음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저 터 놓고 말을 할 수 없어서 대신한 것인데...
그저 계속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으려고 썼었다.
주변은 내가 살아 있어야 하는 가치가 없다고 했는데 정말 그런지 확인을 하고 싶어서
정말 많이 많이 썼었는데 그래서 그 공책들은 보기만 해도 어둡고 무겁게 느껴졌는데
덕분에 나는 스스로 내가 살아 있을 가치가 있는지는 몰라도
죽어 없어지기에는 조금 아까울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쓰면서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했더니 내가 어떤지 보였고
그래서 지금의 나를 만들어 낸 것이다.
지금의 나에게는 나를 위해서 쓰는 일은 안 해도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손을 떨어가면서 썼던 그때와는 다르지만 쓰는 일에서는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지금부터 쓰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정신없이 살아온 나를 다시 보려고 하는 것으로
무엇에 화를 내고 있었는지
무엇에 안달하며 매달리고 있었는지
무엇에 인생은 살 가치가 있다고 환호했었는지...
이제부터 내가 걸어가야 하는 시간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나만을 위해서 쓰도록 아무도 곁에 있지 않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나를 모든 것에서 자유롭게 만들어 준 것도 아닌 것 같다.
내가 나를 찾아서 자유를 얻었다고 느끼며 홀가분하다는 기분에 젖어 보기도 전에
어느새 나는 자유로운 시간과 공간에서 허전함을 자유보다 먼저 알아 버렸는데
이제까지는 나를 억눌렀던 일들에 대해서 쓰면서 참아 냈다면
이제부터는 혼자서 나를 지탱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쓰게 될 것 같다.
쓰는 일은 나를 원망과 한탄에서 꺼내 주고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에 희석되어가는 나를 잡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