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아쉬움
아이들이 있는 미국으로 가기 위해서 일본에 들려 일주일을 지낼 건데
일본에서는 단 일주일의 시간도 나에게 거부감을 느끼게 만드는지
떠나는 기분이 이렇게 무거울 줄은... 정말 정이 안 가는 나라다.
그런 나라에 간다고 생각하니 자꾸 떠나기 싫다는 생각만 하는데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나만의 공간에서 몇 달 한국 생활이라는 것을 했더니
이게 이렇게 황홀한 일이었는지 날 자꾸 주저앉고 싶어 지게 만든다.
사실 한국 생활은 정~~ 말 좋았다
특히 운동화를 고를 때 나를 구속하는 것이 전혀 없었는데
일본은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골라 내 크기의 신을 달라면 거의 없다고 하고
발볼이 넓은 나는 크기가 있어도 맞지가 않아 원하는 것을 신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보통으로 내 크기의 운동화는 당연히 있고 발볼도 넓어 편한데
일본에서는 엄청나게 큰 발처럼 느껴지게 당연히 없다고 하는데 짜증이 났었다.
옷도... 유니클로의 옷으로 비교하면 빠르다.
일본의 유니클로에서 나는 여성 옷 L은 작아서 못 입고 LL을 사 입는데
그래서 겉옷은 아예 일본에서 사 입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국의 유니클로에서는 여성 L을 사면 딱 맞고 겉옷은 LL로 무엇을 껴 입어도 넉넉했다.
일본에서는 발볼의 넓이도 내 어깨의 넓이도 비 이상적인 것 같아 그냥 소심해졌는데
한국에 와 보니 소심할 일이 아니고 당당하게 요구해도 되어 나에게 자유를 주었다.
당연히 미국에서는 내 크기가 아담해서 신은 물론 옷도 M으로 충분하고
그래서 언제든지 색과 디자인을 고를 수 있고 싸게 가격이 내려간 것을 살 수 있다.
이번에 이런 일도 있었다.
정가가 12만 원인 바지를 6만 원에 상설 매장에서 횡재한 기분으로 사 입었는데
혹시나 하고 다시 갔더니 계절이 바뀌어 4만 원에 팔기에 똑같은 것을 얼른 한 장 사고
작은 백화점 입구 판매대에서 똑같은 바지가 2만에 팔아 놀래서 또 샀다.
이렇게 편하고 좋은 바지를 하면서 다시 살 수는 없을 거라고 엄청 아껴서 입었었는데
이제는 몇 년간 여름 바지 걱정 없이 마음 편히 막 입어도 되니 난 보험에 든 기분이 되어
아이들에게 자랑을 했는데 나도 한국생활에 완전히 적응한 것 같아 뿌듯했다.
집만 해도 그렇다.
이 추위에 집에만 들어오면 겉옷을 벗어도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일본은 밖에서 떨다가 들어와도 어디 한구석 따뜻한 곳이 없어 몸을 녹일 곳이 없다.
고다쓰(こたつ 이불을 씌우게 만든 화로)라는 것이 유일한데 발만 넣으면 몸이 녹는지
방이 남쪽이 아니거나 비가 오거나 하면 방 안의 온도가 밖보다 더 내려갈 때도 있어
등을 내놓고 발만 고다쓰에 넣고 앉으면 다시는 나가기 싫어져서 난 쓰지 않았다.
그러니 집안에서는 있는 옷을 모두 껴 입고 스토브 앞에서만 움직이게 되는데
여기서는 집이 따뜻하니 간편하게 입고 생각한 것을 바로바로 할 수 있어서
살아가는 시간을 배로 늘려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음식 하면 더 떠나기 싫다.
매운 음식이 생각나면 언제든지 사 먹을 수 있는 식당도 시장도 있는데
아는 지인이 굴을 듬뿍 넣은 심심한 김치를 두 달 사이에 거의 3포기를 가져다줘서
난 받을 때마다 굴을 골라 먹는 재미에 같이 가져다준 군 고구마에 김치를 찢어 먹었더니
손톱은 붉은색으로 물이 들고 두 손가락에서는 김치 냄새가 빠질 틈이 없었다.
혼자 산다고 여러 잡곡에 은행과 검은콩 등을 듬뿍 넣은 찰밥도 해다 줬는데
10일 전에는 일본에도 가져가라고 더 많이 해 주시면서 또 김치를 줘서 욕심에 받고는
놔두고 가면 굴 맛이 떨어진다고 3덩어리의 김치를 6일 만에 다 먹어 치웠다.
덕분에 거의 매일 김치로만 먹고 지낸 것 같아 영양실조가 되는 건 아닌가 하고 웃었는데
한국에 왔더니 나에게 이렇게 정성이 담긴 김치를 주는 사람도 있구나 해서 훌쩍거리고
지겨울 정도로 먹으면서도 항상 맛이 있어 빵에도 김치를 같이 먹으면서 미쳤구나 했다.
황홀하게 좋았던 한국생활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무엇이 달라서 좋다고 어떻게 좋은 건지 알았다면서 손뼉을 쳐 가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같이 이 기분을 느껴 맞장구쳐 주는 그런 친구가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친구들은 내가 좋다고 방방 뛰면서 떠드는 감동적인 것들이 당연한 것이어서
신나게 깔깔거리면서 즐기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섭섭했다.
난 정말 한국의 생활을 즐겼나 보다.
꼴랑 석 달이었는데 그동안 내가 가장 잘하는 한국말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고는
그래서 쓸데없이 진한 정을 느끼고 떠나려니 그게 도리어 발목을 잡는다.
일본에서 떠나는 것은 항상 홀가분했는데
한국에서 떠나는 것은 내 발로 내가 나가면서 왠지 떠 밀려 나만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다.
이러니 떠나기 싫은 것은 당연한데
안 떠나면 하다가 정말 누가 가라고 했냐면서 가야 하는 목적을 무시하니
아이들의 얼굴이 떠 올라 살짝 미안한 생각이 들어 정신을 차렸는데
아이들을 잊을 정도로 한국이 좋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