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역마살
이제 딱 10년을 미국에서 석 달씩 겨울과 여름을 보내고
봄과 가을은 일본에서 살다가 최근 3년은 부모님의 일로 한국에서 많이 지냈다.
처음엔 그저 아이들이 방학일 때 같이 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크리스마스도 새해도 같이 보낼 수 있어 이렇게 정한 것인데
아이들을 챙기러 간다는 것이 나에게도 추위와 더위를 피하는 일이 되어
친구들이 머리를 잘 썼다고 했다.
그런데 난 거의 석 달을 보내면서 나를 위해서 한 것이 거의 없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 있으면서 왜 난 이렇게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지
친구에게 푸념을 하니 친구가 석 달에 반년치의 일을 몰아한 셈이라고
그러니 자신의 일까지 신경을 쓰기가 힘들지 모른다고 위로를 해 주었다.
사실 나이가 들어 더 그런지는 집안일이 전처럼 후딱 해 지지 않았다.
청소기를 돌리면서도 내 허리를 위해서 쉬어 가면서 해야 했고
세탁도 빨래를 세탁기에 넣기 전에 손빨래를 해야 하는데
아파트의 세탁기가 커지면서 요금도 올라서 빨래를 모아야 아깝지 않아
많아진 빨래를 하려고 이틀 전부터 체력을 비축해야 겨우 세탁을 했는데
확실하게 나이는 나를 천천히 움직이도록 했다.
사람이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는지
일본 고베 집을 나와서 미국 LA 집에 들어오는데 26시간이나 걸리지만
하루만 지나면 난 이곳이 미국인지 일본인지 상관없이 살아가는데
미국의 아파트에 앉아서 일본 아파트의 문을 나와 버스를 타려고 하고
요리를 하다가 일본 집에 있는 주방 도구를 미국집에서 찾기도 하며
남겨둔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 전분이 미국 집이었나 하면서 뒤지고
아낀다고 잘 넣어둔 반지가 어디에 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또 뒤지는데
여기에 작은 오피스텔로 부산의 터전이 생기고부터는 더 복잡해졌다.
나이가 들어가니 엉성해지는 몸에 슬슬 머리까지 흐릿해졌는지
미국에 두고 오겠다고 했던 물건을 그대로 다시 들고 오고
미국에 가져다 놨다고 굳게 믿었던 일본집 여분의 열쇠가 일본에 있어
이상하게 달라지는 내가 걱정이 되었는데
석 달을 살다가 떠나면서 언제나 느껴졌던 서운하고 아쉬웠던 감정들은
10년이 되는 이번엔 다녀온다는 기분으로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다.
석 달이라면 아주 긴 시간이라는 것을 6년이나 지나서 알았다.
아이들과 미국에서 약 10년을 같이 살다가 이런 생활이 되고는
미국에서는 그동안 해 주지 못한 것에 미안해서 종종거리고
일본에서는 해 줄 수 있는 시간도 많은데 할 수 없는 것에 미안해한다.
이렇게 석 달씩 시간을 쪼개어 4번을 보내면 일 년이 지나가는데
4번을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니 그것만으로 복잡하게 느껴졌는지
정말 이루어 놓은 것도 쌓이는 것도 없이 그저 뭔가 한 듯 뿌듯했었다.
이런 착각을 10년이나 하니 확실하게 환상이었다는 것을 알았는데
10년은 나를 길들여 놓았는지 석 달이 되어가면 지겹다는 생각이 들고
떠나고 싶어 떠나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에 고마워한다.
친척 어르신이 나를 보고 역마살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래서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