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구경

중년의 남은 시간

by seungmom

오피스텔 창밖으로 보이는 벚꽃의 엷은 분홍색이 점점 사라지는데

지고 있는 꽃이라도 나가서 즐겨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망설인다.


일본 고베 집에 와 이틀간 집안에서 떠나기 전에 사 두었던 것들을 먹으며

미국을 떠나는 준비와 긴 여정으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방전이 된 것을

자고 먹고 자는 것을 반복했더니 겨우 내가 나처럼 보이게 되었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던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안정이 되는지

미국에서도 그동안 정신줄을 놓은 것처럼 살았던 흔적을 지웠는데

일본에서도 하나둘씩 보이는 그동안의 내 행동에 난 귀엽다고 웃었다.

무슨 생각으로 이걸 여기에 두었을까 이런 것은 무슨 생각으로 샀을까 하며

혼잣말을 해 가면서 누가 대꾸를 한 것도 아닌데 대답을 하면서 깔깔거렸다.


날짜가 훨씬 지난 것까지도 소중하게 먹으며 이틀을 버텼는데

그런 것 마저 없어지니 살짝 내가 왜 이러고 궁상을 떠는지 처량하게 보여

먹고 싶은 것을 사 오자고 배달이 되는 마트에 가려고 버스를 탔는데

버스 안에서 본 풍경에서 벚꽃이 피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

작년을 생각하니 아직 1주일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하면서

더 남쪽 지방에 사는 친구는 벌써 활짝 피었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산 중턱에 있는 이 아파트 주변 가까이에 해가 잘 드는 산에는

부드러운 푸른색 사이로 엷은 분홍색의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햇볕에 눈이 부신데도 쳐다보면서 올해는 나도 정말 즐겨 보자고

작년에 부산 해운대 어느 길이 분홍색으로 변해 황홀해했던 기억이 나

며칠만 지내면 부산에 가니 그 길을 걸으며 마음껏 느끼기로 했다.












전원생활을 즐겨 보자고 논이 가득한 곳에서 산 적이 있었는데

작은 강을 따라 늘어진 벚나무에 꽃이 피면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온통 분홍빛이 되어 매년 10살 많은 지인과 꽃구경을 했었다.

언젠가 툭하니 그 지인이 던진 말이

이 멋진 꽃구경을 한 20번은 더 할 수 있을까? 였다.

이 엄청 충격적인 말에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데

20년 하면 길게 느껴지는 시간을 왜 20번으로 표현했는지...

그다음부터 벚꽃만 보면 나에게는 몇 번이 남았을까 한다.


일본에서 해야 하는 일들을 처리하고 다시 가방을 쌌다.

일주일도 안되어 다시 움직이는 것에 아무 느낌도 없이 계속 잤는데

김해공항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해운대라는 말에 놀래 눈을 뜨고는

멍하게 여행가방을 받았는데 고개를 들어 눈에 들어온 나무에 멍해졌다.

벚꽃은 꽃이 피고 져야 잎이 나오는데...

그럼 꽃들 사이에 잎이 있다는 것은 벌써 지고 있다는 건가...


순간 손해 봤다는 생각과 억울하다는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그저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그 사이 벚꽃이 피기도 전에 사라지고 있었으니

그래서 나에게 몇 번이 남았는지 모르는 그 시간에서 한 번을 날려 버렸다.



매거진의 이전글석 달의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