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터전
부산에 장만한 오피스텔은 장만할 때의 목적을 상실했는데
처음과는 다른 의도로 필요하게 되어 나를 한국에서 살도록 한다.
실버타운의 아버지 짐들은 가야 하는 곳으로 다 실어 나르고
누구도 원하지 않은 것들은 버리는 것으로 그러면 다 끝난다고 생각했는데
서랍 속의 작은 상패나 기념패 등 경대 속의 작은 손때 묻은 손거울 등...
절대로 버릴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것들이 가득 남아 있었다.
머리를 써서 아버지의 흔적과 노인병원에 계시는 엄마의 옷과 소지품을
아버지 방에 있던 서랍장 두 개에 채워서 가져다 놓기로 했다.
이러라고 벽에 붙어 있던 선반과 장식을 떼어 낸 것은 아니었는데
딱 떨어지게 그 자리가 처음부터 서랍장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처럼
바닥의 색과도 어울려 썰렁했던 공간이 꽉 차게 어우러졌다.
서랍장을 날라다 주시는 아저씨가 어디에 놓을 건지 확실하게 말하라고 해서
적당하게 놔주시면 나중에 내가 밀어서 옮기겠다고 했더니
아저씨는 절대로 그러면 안된다고 이 장은 다 틀어 질대로 틀어져 있어서
번쩍 들어야지 밀면 못쓰게 될지도 모른다며 내가 결정하는 걸 기다려 주셨다.
나중에 서랍 안을 정리하려고 꺼내어 보니 아저씨의 말이 이해가 되었는데
겉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문짝도 제대로 닫히는 것은 하나 뿐으로
서랍은 못 없이 끼워서 만든 것으로 그 사이가 너무 말라 틈이 나 있었다.
이러려고 장만한 공간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서랍장이 들어오고 나니
비워 두더라도 이 공간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생겨 미안함이 줄어들고
기왕 유지를 한다면 그동안은 열심히 와서 살아야겠구나 하니
이게 다 날보고 한국에서 살라고 그러나 보다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9평이 안 되는 오피스텔에 난 한국생활을 펼치려고 한다.
16평이나 되는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고베의 집에 비교를 하니 너무 작고
거기다 이 오피스텔에는 아버지의 서랍장에 엄마의 발틀까지 떡 버티고 있어
내가 쓰는 가구는 침대와 탁자와 의자 두 개뿐이니 내 공간이라고 하기엔...
그런데도 일본의 집보다 마음이 편하고 미국의 집보다 많이 고급스럽다.
일본에 있는 내 집에는 아이들이 쓰던 책상과 침대를 두고 살면서
식탁은 이 아파트를 살 때 전시용으로 놔두었던 것을 공짜로 달라고 해서 쓰고 있는데
한국인의 습관에서는 구조나 방식도 다르고 엄청난 습기에 편하지 않다.
그리고 미국의 월세집에는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모든 가구는 ikea 것인데
이제 18년을 그대로 썼더니 책상의 다리는 책상 마음대로 자리를 잡아 흔들리고
의자는 움직일 때마다 삐그덕 거리는 것을 내가 철사로 다리와 다리를 잡아 매어 두었다.
다시 장만하고 싶어도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것은 변함이 없고 공간도 좁아서
뭐든 있는 것을 고쳐가면서 언젠가 자리를 잡으면 그때에 하면서 그때를 기다린다.
이런 상황들로 항상 발이 땅에 닿아 있지 않은 것 같이 어정쩡한 생활을 하는데
이 공간은 푸근함과 넉넉함을 주는 고국으로 타국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을 줄 것 같다.
아직은 정리를 해야 하는 아버지의 물건들 여러 개의 주소록이나 취미로 찍은 사진들
이런 것들을 해 가면서 나만의 한국 생활을 하려고 일본에 머무는 시간을 확 줄여서
비행기 표도 사놓고 미국에 있는 운동복도 가져가고 일본에 있는 기타도 들고 가서
오피스텔 건너편에 있는 기타 교실에도 등록을 하고 운동도 하려고 한다.
그러니 이 공간은 다 갖춘 것이 되는데
오래된 물건이 공간에 버티고 있으니 묵직해 이 나이 먹은 사람에게는 맞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