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을 피해서

중년의 여정

by seungmom

올해의 태풍은 나에게도 기억에 남게 될 것 같다.


미국에서 딸이 동부로 출장을 간다고 한 달 전부터 여정을 잡고 예약을 했었다.

연구실의 여러 동료와 같이...

딱 떠나는 날 동부에 태풍이 상륙을 할 것 같다고 해서 걱정이 되었는데

이 태풍은 엄청난 느린 속도로 머뭇거려서 워싱턴 DC에 무사히 도착하고









며칠간 태풍이 워싱턴 DC를 둘러 지나가면서 흐린 날씨에 간혹 비가 내려

LA에 없는 습기가 장난이 아니라며 딸은 피부가 촉촉하다고 좋아했는데

그게 다 태풍이 가져다준 것으로 태풍이 지나고 나니 LA 못지않게 더워졌다고 했다.


딸아이의 출장으로 난 미국에 살면서 태풍에 신경을 쓰며 뉴스를 찾아보기는 처음이었는데

가기 싫다는 출장이 태풍으로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컸었다.

그런데 태풍으로 출장에 색다름을 느끼게 해 주었다고 하니...

딸은 9월 21일 하루 일찍 일행보다 먼저 LA로 돌아왔는데 내가 22일 떠나기 때문이었다.


난 22일 밤에 LAX를 떠나서 24일 오후 2시가 다 되어 고베 집 앞의 버스 정류장에 내렸다.

LA 집을 나선 시간부터 계산하면 25시간으로 비행기에서도 자고 인천 공항에서 기다리며 자고

다시 비행기에서 자고 그래도 모자랐는지 공항버스에서도 또 잤었다.

딸아이가 서부에서 동부를 횡단하는 논스톱의 5시간 반 비행도 피곤했었다고 하면서

엄마는 어떻게 석 달에 한번 이렇게 올 수 있는지 대단하다고 했는데 나도 점점 힘에 부치는지 잤다.


KIX 공항의 모습이 조금은 썰렁해 태풍 제비의 탓인가 하면서 긴 다리를 건너면서는 부서진 곳을 찾았는데

잠이 오는 눈을 억지로 뜨고 있어서 그랬는지 차선을 막아 놓은 것은 있어도 다른 것은 찾을 수가 없었다.


공항버스에서 내려 다시 JR 전차를 두 구역 타고 시내버스를 탔는데 생각이라는 것은 나를 떠나

그저 본능으로 집으로 향했는데 버스에서 내려서는 안심이 되었는지 머리가 움직였다.

그래서 문뜩 태풍 제비가 생각이 나고 그래서 7층짜리 아파트를 올려다봤는데...


일본에서 내가 살았던 아파트들은 모두 베란다에 옆집과의 경계로 세워 놓은 것이 있었는데

그 모양도 크기도 같은 얇은 판의 두께는 성인이 발로 차면 깨어질 정도의 것으로

이것은 지진이 나서 도망가기 힘들면 옆집으로도 갈 수 있도록 하는 비상용이라고 했다.

그래서 아파트의 주인이 되어도 베란다는 공용의 재산으로 내 마음대로 뭔가를 할 수가 없는데

베란다는 생각보다 넓지만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크기의 비상구가 있고

그래서 당연히 위층으로 오갈 수 있는 계단도 벽 쪽으로 설치가 되어 있는데

이것들 주위에는 무엇이든 방해가 되는 것을 둘 수가 없다고 일 년에 두 번 점검을 하러 왔다.


태풍 제비를 생각하면서 올려다본 아파트에는 엄청 눈에 띄는 파란색 비닐이 6층과 7층에 보였는데

베란다의 비상용 칸막이가 있어야 하는 곳에 파란 비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행히 내 집이 있는 5층을 보니 파란색이 안 보여서 5층부터 아래층은 무사했구나 하고

집에 들어와 살펴보니 정말 멀쩡해서 3개월 닫아 둔 냄새나 빼자고 베란다 쪽 창문을 열어보니

옆집과의 경계로 만들어 놓은 칸막이가 사라져 옆집이 그대로 다 보였다.

그다음 칸의 칸막이는 떡하니 보이는데...





























옆집 할머니는 자신의 시골집이 지진으로 흔들려 위험하다고 1층에 사는 아들이 이사를 시켰다고 하는데

할머니 집에서는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가 번갈아 들리는지 창문을 열 때마다 대화 소리가 들렸었다.

그런 할머니 집과 내 집의 베란다가 하나로 되었는데 난 집에 없어 불편하지 않았는지

유치한 파란색 비닐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25일 정신을 차리고 아파트 관리를 하는 회사에 전화를 해 보니 옆집 할머니 집에서 연락을 받았다고

베란다는 공용의 재산이어서 아파트 전체의 보험으로 수리를 하게 될 거라고 했는데

언제 할 건지 정해지지 않았다고 해서 다시 집을 떠난다고 하니 할머니 집을 통해서 수리를 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태풍이 나에게도 존재감을 알렸구나 하니 이제 온다는 태풍 짜미가 생각나고

언젠가 공항에 가서 비행기가 뜨지 못한다고 다음날에는 태풍이 지나가 비행기가 뜰 거라고 하는데

다시 집으로 가기에는 너무 멀고 그래서 공항에서 보내려니 공항 주변의 호텔은 자리가 없어

가방을 끌고 공항 밖으로 나가 이상한 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던 힘든 기억이 떠올랐다.


26일 태풍은 아직이지만 내가 부산으로 떠나는 날짜가 30일 오후 7시 반인데...











태풍이 나를 만나고 싶다는 건지 딱 그 시간에 태풍이 지나간다고 되어 있었다.

두 달이나 빨리 사 싸게 산 비행요금의 절반을 내면서 날짜를 바꿔야 하는지 망설였더니

아들은 미리 떠나라고 하면서 저번 제비처럼 되면 한참 걸린다고 했다.


26일 날짜를 변경하면서 태풍이 정말 그 시간에 지나갈까요 하고 물었더니 대답이 없다.

딸아이처럼 태풍이 딱 알맞게 더 늦게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물어봤는데...

28일 떠나는 것으로 정하고 급하게 습기 제거제를 사서 27일 하루는 집안 대청소를 했다.

이번 여름은 정말 습기가 많았는지 석 달만에 전부 물로 변한 제거제를 새것으로 바꿔 놓고

천장과 벽의 모서리까지 청소기로 눈에 보이지 않는 거미줄을 걷어 냈다.

24일 짐을 꾸려서 온 가방을 현관에 그대로 뒀는데 거기에 다시 짐을 챙겨 넣고

28일 며칠 전에 했던 버스에 전차에 공항버스를 차례로 갈아타고 KIX 공항에 왔다.


28일 늦은 저녁 부산의 작은 내 공간에 짐을 놔두고 콩나물 국밥을 먹으러 갔는데

일본에서는 잠시 지낼 거니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자고 삼각 김밥만 사다 먹었던 것이

태풍 덕분에 이렇게 국물이 있는 성찬을 빨리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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