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꾹 눌러살고 싶다.

중년의 몽상

by seungmom

한국에서 꾹 눌러 산다면 하고 싶은 것들이 엄청 많을 것 같다.


이번에 부산에서 약 석 달을 눌러 지내면서 이런 느낌을 몰라 다행이라고

이 자유로움과 풍요로움을 몰라서 타국에서 견딜 수 있었구나 했다.


아버지가 혼자 계시게 되니 자주 오게 되고 오면 길게 있게 되었는데

병원에 입원하시고부터는 더 길어져 이대로 있으면 내가 파산할 것 같았다.

머리를 써서 엄청난 숙박비를 줄여 보자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해서

조금 자유롭자고 계속 비워둬야 하는 공간을 만든다는 것에 머뭇거렸지만

확실한 이유가 생기니 일은 거침없이 작은 오피스텔을 찾아내고 수리를 했다.


1년의 관리비가 10일의 숙박비로 해결이 되어 다른 여유를 즐길 수 있다는 것도

호텔이 아니니 물건을 두고 다녀도 되어 가방이 한결 가벼워진다는 것도

성수기를 피해서 다녀야 했는데 이젠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공항버스 정류장이 가깝고 먹을 곳이 많은 재래시장이 있는 곳으로 찾았다.

새로 지어진 건물보다 10년 전의 건물이 더 잘 지어져 방음이 잘 된다고 하니

오래된 먼저 지어진 건물이라 지하철 역과 버스 정류장이 가까워 교통도 최고인데

덕분에 부담까지 덜어 주는 가격으로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겨 오피스텔을 샀다.


정말 오래전부터 꿈은 꿨지만 감히 엄마가 있는 부산에서 살아갈 배짱이 없었다.

그래서 피해서 도망을 다니듯이 호텔에서 지냈는데 엄마가 병원에 입원을 하고 나서

나도 조금은 편해졌는지 아버지가 계시는 동안에는 부산에 와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돈을 손에 쥐고 벌린 것은 아니지만 긁어모아서 모자라는 것은 딸에게서 빌리자고

모든 것이 끝나면 처분하는 것으로 그때 딸에게도 돌려주면 된다는 계산으로

11월 말에 아버지의 병원을 다니면서 오피스텔의 잔금을 치르고 수리를 시작했다.












12월 중순이 되면 호텔의 비용이 확 뛰어오르는데 그전까지 수리를 마쳐 달라고

벽에 붙어 있는 것들을 모두 뜯어내고 도배도 벽과 천장을 같은 것으로 해 달라고 하니

수리해 주는 아저씨가 왜 멀쩡한 것을 뜯냐고 천장은 달라야 한다고 계속 불안해하셔서

절대로 아저씨 탓을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마치고 나서는 엄청 넓어 보인다고 하면서

하나의 예로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 줘야겠다며 사진도 찍어 가셨다.


급하게 호텔에서 나오기 위해 침대와 작은 탁자와 다른 두 개의 의자를 사고

봄과 가을에만 올 것 같아서 그런 이불을 샀는데 들어와 며칠을 지내고 나서

온도 조절하는 기계가 고장이 나서 방이 따뜻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난 건물 전체가 아직은 난방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친구는 아니라고 알아보라고 해서 관리실 사람이 와 보더니 기계 탓이라고

그동안에 난 가지고 온 옷을 모두 껴 입고 가벼운 이불을 겹으로 덮어 잤는데

주문한 온도 조절기는 떠나는 날 아침에 관리실 아저씨가 부품을 가져와 고쳐 주었다.


그런데 이런 것조차 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말이 막 통하는 아저씨와의 대화에 만사가 다 형통했는데

미국에서는 뭔가 수리를 부탁하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뭘 고칠 것인지 모르고 있다가

다 되었다고 하면 구둣발로 다닌 바닥을 닦아 내는 것이 내가 하는 전부였다.


한국의 오피스텔의 자랑거리도 무진장 많아 새롭고 신기했는데

한국의 생활을 해 보니 정말 이런 낙원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고 싶었던 재래시장에 들러서 방울토마토 한 소쿠리를 샀는데

봉투에 담고 나서 그게 얼마나 많은 양인지 혼자서 싱싱할 때 먹어 치우긴 힘들어

반을 덜어 내어 지나가던 모르는 사람에게 같이 먹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덕분에 한참을 방울토마토의 맛과 가격과 양에 대해서 떠들었는데

갑자기 만난 사람과 이렇게 말이 통하고 맛이 통하는 것에 쾌감을 느꼈다.


처음부터 썼던 내 나라의 언어로 내 나라의 음식으로 내 나라의 사람들로 가득 찬

내 나라에 쭉 눌러살았더라면 나도 이런 것들을 모두 누렸겠구나 했다.












한국에 쭉 살았다면 지금의 집 크기보다는 많이 넓었을 것 같고

집안의 가구도 묵직하니 푹 주저앉아 버티고 있는 것 같은 그런 것으로

오래된 항아리도 하나쯤 있고 커다란 냄비도 하나쯤은 가지고 살면서

항상 부러워했던 김치 냉장고도 망설이지 않고 사서 쓰고 있을 것 같다.


이 공간은 내가 상상하지 못한 것을 나에게 주었다.

다시 3월 봄이 되어 미국을 떠나 일본에서 짐을 풀고 바로 한국으로 왔는데

전에는 비행기 좌석과 호텔 예약이 같은 날짜에 가능해야 하는 일이

이번엔 비행기 표만 사면 된다는 것에 해방감을 느꼈다.

그리고 보니 이제부터는 여름 성수기나 부산 영화제에도 피하지 않아도 되어

난 내가 가지고 있던 구속을 많이 풀어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젠 이곳에서 눌러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욕심에 다시 꿈을 꾸며

아이들에게 가지 않아도 되는 어느 날 이곳에 푹 주저앉아도 살 수 있도록

주변의 공원에도 시장의 아주머니에게도 눈도장을 찍어 놓으려 하는데...


3개월을 닫아 놨더니 벽지가 다 마르지 않았는지 냄새가 많이 나 힘들었는데

그런 것도 다 해결이 되고 좋아하는 스틱커피도 컵도 사서 엄청 즐겨 보자고 하니

4월 중순 이 공간을 만들도록 해 준 이유가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의 간병인 아주머니가 손수 볶았다며 참깨 한 병을 가져다주셨다.

그 고소한 향기는 진짜 한국산 참깨라는 의미보다 더 따뜻함이 있었는데

나에게도 이런 것을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서 향기는 더 진했고

이런 것을 놔두고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도 확실하게 느끼게 해 줬다

5월 호텔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김치도 10년 된 매실액도 가져다주셨는데

왠지 눈물이 나와 아주머니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6월 말 그 참깨는 잘 보관해서 일본을 거쳐 미국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지고 왔는데

아이들은 그 고소한 향기에 놀라더니 볼 때마다 뚜껑을 열어 킁킁거리며 향기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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