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ungmom May 01. 2018

아버지의 장례식

중년의 자리

아버지의 장례는 아버지의 힘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소인 듯했다.


나는 한국을 떠나면서 한국에서의 친지도 친구들과도 떠나게 되어

어떤 소속의 힘이라는 것을 누려 본 적도 없고 그래서 이런 걸 모르고 지냈다.

이런 속에서 살아가면 든든하겠구나 하는 것과 복잡해지겠구나 하는 것이

타국 살이에서는 주변의 울타리가 없어 기댈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이제 겨우 알고 느낄 수 있게 되니 그 힘은 사라져 가고 있었다.


아버지와 두 동생 덕분에 온통 의사들이 와 주었는데

세명 모두가 서울대 출신으로 아버지의 후배가 동생의 교수로 연결되니

여기서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나는 사람도 제자와 선배를 만나는 사람도 있었다.

이틀간 이렇게 많은 의사를 본 적도 남자들을 본 적도 없어 신기했는데

남편의 친구라며 오는 사람마다 작은 소리로 자랑스럽게 떠드는 올케의 표정에

이 집안이 이랬구나 하며 전혀 몰랐던 것 같은 느낌으로 나에게는 생소했다.


이틀 동안 조문객을 받았는데 일을 도와주시던 아주머니들도 

이렇게 젊잖은 조문객들은 처음이라고 정말 조용하다고 여러 번 이야기해

난 점점 살그머니 부러운 기분이 들어 괜히 심통이 나려고 했는데

이래서 아버지의 힘이 무엇이었는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장례식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서 사무실이라는 곳에 앉아 

응급실에서 하루를 보내 정신이 나가 있는 듯한 멍한 머리로

어떤 식으로 할 건지를 묻는데 절차는 거의 지불하는 액수와 관련된 것으로

거액을 지불하면 거창 해져 그것이 자식의 도리처럼 느끼며 결정했다가 

계속 진행되는 절차에 구분되는 것이 가격 때문인 것 같아 정신을 차렸다.

돈이 장례식을 치러주기는 하지만 액수의 크기가 정성은 아닌 것 같다고

장례식까지 마음을 돈으로 대신하는 것은 아니라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장례식이란 것을 처음 해 보는 입장에서는 뭐든 신기하고 의문 투성이로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안 하면 안 되는 이유는 뭔지 알고 싶었지만 

엄숙하고 진지해야 하는 자리라는 것에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면서

좋은 곳으로 편히 가시라고 절을 할 때마다 주문처럼 반복했다.


그런데 나는 이 장례식에서  

절을 해도 올케들이 먼저이고 걸을 때도 올케들의 뒤에서 걸어야 했다.


이 장례식은 내 아버지의 장례식인데 자식인 내 자리가...










매거진의 이전글 아버지가 떠나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