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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mom Apr 28. 2018

아버지가 떠나셨다.

중년의 첫 경험

미국에서 일본으로 와 친구에게 연락을 하며 바로 부산에 가야 한다고 했다.


친구도 내 아버지가 어떠신지 궁금했다며 물었는데

친구는 지금의 내 상황이 자기의 상황보다 나을 거라고 했다.

친구의 아버지는 건강하셨던 분이 갑자기 위독해져 병원에 도착했을 때엔

이미 돌아가셨다며 이별을 할 준비라는 것이 없는 상태여서 엄청 힘들었다고 했다.


두 번째의 응급실에서 호전되어 일반 병실로 옮기고 정말 많이 좋아져서

이젠 길게 계실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요양병원으로 옮겼는데 

다시 대학병원 응급실에 왔을 때는 아버지의 상태가 안 좋다며

기계로 호흡을 하도록 하자고 하는데 그건 한번 하면 뺄 수는 없다고 했다.

우리는 두 번 응급실에 와서 뭔가를 했는데 해서 생명의 연장은 되었지만

삶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아버지의 고통은 매일 계속인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동생들과 나는 아버지가 원하셨던 것을 존중하자고 어렵게 기계를 거절하고

그래서 아버지는 스스로의 힘으로 힘들게 숨 쉬다가 호흡을 멈췄다.


저녁 늦게 요양병원에서 일주일 만에 다시 대학병원의 응급실로 와

아침까지 간병인과 둘이서 교대로 자리를 지키면서 아버지의 힘든 숨소리를 들었다.

너무 힘들게 숨을 쉬어서 기계를 달아 달라고 할까 하는 흔들림도 있었지만

뇌가 많이 망가져 거의 5달 동안 소통이 안되어 힘들어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저 편하게 조금이라도 편하게 이 시간을 보낼 방법이 없을까 하고 생각하니

클래식을 많이 들으셨던 것이 생각나 휴대폰을 꺼내어 아버지 귀에 대어 드렸다.

그랬더니 숨이 힘들어도 얼굴의 표정은 조금씩 나아져 편안해하시는 것 같아서

새벽 내내 아버지가 즐겨 들었던 곡을 계속 틀어 드렸다.

의사는 아침까지가 고비라고 했는데 아침이 와서 다시 나아지실까 하고

동생들이 와 밤새 고생했다고 잠시라도 잠을 자고 오라는 말에 병원을 떠나

이를 닦고 잠을 청해서 잠 속에 막 들어가려니 전화가 와 빨리 오라고 했다.


위독하다는 말도 임종이라는 말도 아니고 그저 빨리 오라고 해서

옷을 챙겨 입고 나와 버스를 타야 하나 했다가 택시를 탔는데...


아버진 내가 막 도착하고 조금 있다가 숨을 멈췄다.

아버지의 숨소리가 너무 조용해서 숨이 멈춘 것 같다며 빨리 불러주지 않았다고 하니

의사도 동생도 아직은 아니라고 기계를 보라고 했다.

아버지는 편한 얼굴로 숨소리도 없이 불러도 불러도 움직임이 없더니

기계가 숨을 멈췄다고 알렸는데 아버지의 손은 아직도 따뜻해서 실감이 나질 않았다.

의사가 또 하나의 기계는 아직 움직인다는 말에 들으실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귀에 대고 그동안 많이 힘드셨는데 잘 참아 주셨다며 서둘러 인사를 하는데

또 하나의 기계도 멈추고 의사가 사망하셨다고 전했다.


한 사람의 삶이 끝나는 순간은 너무나 짧았다.

아버지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조금은 더 서글프고 애석하고 아쉬웠을 텐데 하는 생각도...


아버지의 표정은 그동안의 모습과 달리 편안해 보였고 하얀 피부도 예전의 아버지 같아

보내 드리는 것이 잘 한 것이라고 꽃 피는 봄날에 가셨으니 좋으실 거라고

억지 같은 혼잣말로 자기 합리화를 시켰다.


이별하는 준비에 대해서 아버지는 우리에게 적당한 연습을 시켰는데

응급실로 병실로 다니면서 했던 그 시간들이 이별하는 준비였는지

이제야 친구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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