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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mom May 14. 2018

아버지의 49재

중년의 등산


아버지 덕분에 난 매주 한 번씩 등산을 하고 있다.


실버타운으로 가시기 전에 35년을 사셨던 아파트 뒤로 산이 있고

그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운동하는 휴게소도 더 올라가면 오래된 절도 있는데

산속에 있는 그 절은 사진도 찍고 분위기도 즐긴다며 아버지가 자주 다니셨던 곳으로

가실 때마다 산속에 있는 절이어서 오래된 건물이어서 좋다며 편안해하셨다.

취미로 사진을 찍으셨던 아버지는 주로 절들을 찾아다니셨는데

아버지는 불교가 좋으세요? 했더니 불교는 아니고 산속에 있는 절이 좋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오래 사셨던 이 동네에 자주 다니셨던 이 절에 아버지의 49재를 부탁하고 

첫재와 막재는 다 같이 하는 것으로 하고 첫 재를 지냈는데

다들 불교와 다른 종교로 유일신이어야 한다는 것에서 절에 오는 것을 꺼려

무 종료인 나만 나머지 주를 혼자 절에 가 절을 하기로 마음먹고 실천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나이를 생각해 올라가고 내려오는 것은 무리라고 택시를 타고 올라가서

내려가는 것은 산을 즐기면서 내려가 보자며 천천히 걸으며 무릎에 신경을 썼는데

다음날에는 오랜만에 정말 오~랫만에 뭉친 다리로 웃음이 나와 피식거리면서 걸었다.

그래도 반복하면 어떻게 달라지는지 다음 주엔 그다음 주엔 점점 쉬워졌는데

다리도 거뜬하고 마음도 여유가 생기는지 하얀 아카시아 꽃도 찾아 

국민학교 다닐 때 보고 처음 보는 것 같은 아카시아 꽃송이가 이렇게 작았나 하며

얼굴을 파묻고 뜯어먹던 향기가 진해서 진동을 했던 어릴 적 아카시아 꽃을 떠 올렸다.


난 이런 등산을 이런 화려한 절의 모습을 내가 마음먹고 보러 갈 일은 없으니

봄날의 사치는 모두 아버지가 주는 것 같이 느껴졌다. 


법당 안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 엄숙한 분위기에 목탁소리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스님의 목소리로

잘 닦여진 나무 바닥에 푹신하고 넉넉한 방석을 놓고 스트레칭을 하듯이 넙죽 엎드리면 얼마나 편한지

그대로 잠시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를 잊고 느긋함을 즐기는데 온몸의 뻐근함이 풀리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사진을 향해서 가시는 길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절을 하고는

그냥 어느 불상인지 상관없이 그저 '좀 더 착하게 살도록 노력을 해 보겠습니다'하고 절을 했다.

고국의 냄새 같은 향과 차가운 공기에 이대로 엎드려 있고 싶어 절을 하는데

절을 하려니 뭔가 이유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이제까지는 그냥 '고맙습니다'라고 했었는데

요즘에 너무 바쁘게 살면서 놓치는 것이 있나 하는 생각에 '노력해 보겠습니다'라고 바꿨다.


법당을 나와서 자판기 커피를 들고 앉아 하늘에 닿아 있는 나무를 보는데

한 아주머니가 나에게 차를 가지고 왔냐며 미안하게 내려갈 때 태워 달라고 했다.

같이 내려가면서 혹시 내려가는 차가 있으면 하는 기대를 하는지 뒤를 자꾸 돌아보는데

그러면서 힘들다고 하기에 아예 기대를 하지 말고 그냥 걸으면 덜 피곤하다고 하고는

난 내가 한 이 말에서 내가 왜 절을 하면서도 잘 되게 해 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지 알았다. 


일본 친구가 한국에 놀러 오면 꼭 어느 절이든지 한국의 절을 보여 주려고 절을 찾아갔는데 

절마다 기부를 하고 소망이나 소원을 기왓장에 쓰는 것이 있어 이것도 좋은 기회라고 

할 때마다 난 아이들과 내가 건강하게 잘 지내는 것에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써 두었었다.

언젠가는 지나가던 스님이 그걸 보고는 이렇게 쓰는 사람은 처음인 것 같다고 하시며

모두 바라는 것을 쓰는데 하시더니 내가 써 둔 기와에 뭔가 신기한 그림 같은 것을 써 주셨다. 


기대나 바램을 내가 아닌 대상에게 빌면서 기도하면서 원하는 것은 허무한 일로

뭔가 원해서 받고 그 대신 뭔가를 내어 준다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니 맞다는 생각인데

그렇다고 새로운 것을 받고 나에게 익숙한 뭔가를 내어주는 것은 도리어 힘들 것 같아

내가 열심히 했더라도 결과를 바라는 일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렇다고 다 수긍이 되는 그런 인간은 아니어서 속앓이는 하는 편인데...


긴 타국 생활로 어떤 울타리 안에서 푸근하게 기대어 사는 것을 해 본 적이 없어 그러는지

기대어 사는 것에 좋은 점보다는 기대어 나약해지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한다.

잘 되면 내 탓이고 잘 안되어도 내 탓이어야 난 반성도 하고 더 단단해지는데

살짝 한번 기대는 것도 맛을 들이면 점점 더 의지할 것 같고 

그러다가 원하는 데로 안되면 내 탓은 하지 않고 원망만 하게 될 것 같아 피한다.


이제 4월 초파일이 다가오니 절의 모습이 매주 점점 화려하게 변해 가는데

난 그것을 아버지 덕분에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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