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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mom May 30. 2018

아버지의 책

중년의 시대

아버지의 책을 가져가 주시는 분들을 위해서 책장 앞에 섰다.


아버지의 책장에 있는 책을 색으로 구분하고 

자리가 없어 이중으로 꼽아 두었던 것들 중의 장편은 뒤로 넣어 공간을 만들었다.

오래된 책 냄새와 먼지가 섞여 날아다니는 속에 파 묻혀 이틀을 보냈는데

덕분에 그날부터 며칠 목이 아파서 이러다 죽나 하는 엄살을 피웠다.

 


아버지가 읽으시던 이 책들은 모두 일본어로 되어 

있는데 식민지 시대에 초등과 중등학교를 다니셔서 한글보다는 일본어가 더 편하다고 하셨다.


예전 부산에는 일본어 책만 취급하는 곳이 많이 있어 그곳을 다니시며 책을 고르셨는데 

내가 일본에 살면서는 나에게 책을 주문하셔서 어떤 책을 좋아하시는지 알게 되고 미국으로 가기 전까지 열심히 사다 날랐었다.








원목으로 되어 있는 책장은 내가 아버지의 특명으로 폭과 간격 등을 정해서 벽 하나를 채웠는데

내가 일본으로 가고 난 후 아버지의 집은 아파트로 변했고 책장도 책도 반으로 줄면서

어릴 적에 읽었던 동화나 그림책들이 한 권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실버타운으로 오면서 아버지가 주로 읽으시는 책을 빼고는 거의 버리면서

책장이 반으로 줄어드니 반은 버려야 한다고 아버지의 책도 내가 판단하며 버렸는데

생각보다 공간이 좁아 모두를 꼽아 둘 수가 없어 문고판은 거의 이중으로 넣어 두었었다.


실버타운에서 아버지는 책이 많다고 소문이 나 책을 빌리러 오시는 분들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분들이 많이 가져가 주신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무실에 부탁해 두었는데 소식이 없었다.


그렇게 아무런 소식이 없던 중에 점심시간이 지나

소파가 있는 휴식공간에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무작정 뛰어 나가서

혹시 일본어 책을 읽으시던 분이 계시냐고 했더니 

할머니 한분이 손을 드셨다.

얼마나 반가운지...

이분은 아버지의 소식에 안타까워하시면서 책을 

가지고 가 주시면 고맙겠다는 말에 그러자고 하셨다.



이 분이 문예춘추에 줄을 쳐 가면서 읽으셨던 분으로 9명 정도가 일본어 책을 읽는다고 하시며

그분들에게 연락을 해 주시고 아버지와 얼마나 책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를 했는지 알려 주셨다.

나도 아버지가 이렇게 열심히 읽는 사람도 있다며 줄 쳐진 책을 보여주어 바로 가깝게 느껴졌는데

그렇게 느껴지니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나와 한동안 콧물과 눈물을 닦아야 했다.


책이 잘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아서 원하는 책의 후속 편 등 나머지를 찾아야 했는데

조금만 서 계셔도 힘이 드는지 앉다 서다를 반복해서 이렇게 보여 드리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삼 일 후에 다시 오시라고 하고  오시지 못한 분들에게도 선전을 해 달라고 하고는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나도 체력과 끈기가 하고 싶은 욕심과는 달라 이틀이나 걸리고

이 정도는 하면서 만족하는 선에서 멈추고 사진을 찍어 두었다. 


이틀을 책과 지내니 책 속의 시간과 흐름이 느껴져 이것도 아버지의 세상이었구나 하는 걸 느꼈다.


실버타운으로 오면서 다 빼냈다고 생각했던 

한글로 된 책들이 나왔는데 동생이 대학을 다닐 때 

사 들인 문고판 책으로 들고 다니면서 읽었던 것이 생각나 한참을 주저앉아 구경을 했는데 추리소설도 그땐 엄청 재미있게 잠을 못 자도 끝을 봤던 기억에

동생에게 가져가라고 하니 맞춤법이 달라 졌다고...


한글로 된 장편 장길산 책은 아버지가 재미있게

읽으셨는지 이사할 때 버리지 마라고 하셨다.



친구가 이런 사진을 보더니 일본어 책을 읽으시는 분들이 아직도 이렇게 많이 계시냐고 했다.


책장이 높아 한참을 쳐다보다가 책이 너무 많으네

하시며 의자에 앉아서 한 말씀하셨다.

나도 살 날이 얼마 없는데 하는...


마음에 들어하시면 곁에서 얼른 연결된 것을 꺼내고 뒤편에 있는 것들도 볼 수 있도록 해 드렸는데 이런 행동이 책방이나 도서관에서 일하는 기분일까 하며

잘 정리해 둔 것을 뿌듯해했다.



아버지처럼 일본어가 편한 분들이 정말 많이 오셨었다.

예상대로 라면 이렇게 많이 오셨으니 책장의 책이 듬성듬성 해 져야 하는데...

한분이 겨우 10권 안팎이니 줄어든 것이 표가 나질 않아 좀 더 많이 가져가 주세요 했더니

들고 있는 것을 가리키며 이것도 눈이 침침해 죽을 때까지 다 읽지 못한다고 하셨다.


이제는 마지막 발버둥으로 일본어 책을 취급하는 헌책방을 찾으려고 한다.

적어도 아버지의 흔적이 폐기물이 되는 것은 막으려고... 


난 이 시대가 아닌 시대의 흔적을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고

그것을 확인하고 증명하듯이 사진으로 남기고 이 상황을 내 아이들에게 전했다.

내 아이들은 전혀 다른 시대를 살면서 그저 할아버지의 책이라는 것으로 느꼈던 것이

아주 오래되어 잊힌 역사가 이렇게 가까이에 남아 같이 살아왔다는 것에 신기해했다.


나는 아버지의 시대에 한 발을 걸치고 아이들의 시대를 향해서 몸을 틀고 서 있었는데

이제 아버지의 물건들이 사라지면 고스란히 나의 시대를 살아가게 될 것 같아 설레인다.

60이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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