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ungmom Jun 30. 2018

20년 된 소금 단지

중년의 무식

아버지의 실버타운 집을 정리하는데 너무 더워서 현관문을 열어 두었다.

그랬더니 아버지의 책을 가져가신 분들의 이야기로 전해 들었는지

할머니 한분이 오셔서 집에 있네 하시더니 들어가도 되냐고 했다.


그렇게 들어오신 분이 다른 친구를 부르며 이야기하셨다.

여기 네가 좋아할 것 같은 그릇이 있는데 보러 오라고...


다 가져가도 되는 것들로 폐기물이 되는 것보다는 좋다는 생각에

마음에 드시면 가져가세요 했는데 아직 꺼내 놓지도 않은 것까지 열어...


아무리 그래도 내가 헤어지겠다는 마음을 먹고 나서야 내어 놓았는데

마음의 준비도 없는 것까지 여러 분들이 이것저것을 꺼내어 물어보셨다.

그리고는 생활의 달인이 된 연륜으로 뭐든 척척 알아내는데

도장이 없는 그릇은 필요 없다며 들고 있던 것을 다시 내려놓으셨다.


아직 열어 보려고 하지도 않은 베란다의 창고 문도 열리고  

그곳에 있던 것들도 할머니들의 손으로 하나씩 선을 보였는데 

작은 떡시루를 너무 예쁘다고 하시더니 콩나물 키워 먹으면 좋겠다며

친구에게 가지고 가라고 아깝다고 막 막 권했다.


이쯤 되니 물건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이미 나를 떠나 버려 나에게 묻지도 않았는데

작은 항아리의 뚜껑을 열어 보고는 소금이네 하시더니 바로 감탄을 하셨다.


나도... 소금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저번에 살던 아파트에서 실버타운으로 이사를 오면서 가지고 가야 한다고 해

하는 수 없이 끌고 온 것으로 20년은 지났을 거라고 일해 주시던 아주머니가 말해 주셨다.

그래도 그동안 누군가가 관리를 한 것도 아니고 밀폐가 되는 뚜껑이 닫혀있던 것도 아니어서

언젠가 한번 보니 위에 먼지가 앉아 있는 것 같아 먹을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난 며칠 전 퍼다 버린 된장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퍼다 버려야겠구나 하는데

그러는 동안 할머니 몇 분이 모여 작은 단지 두 개와 조금 큰 단지 한 개의 소금을 보면서

이렇게 알이 굵다니 하시며 서로 가져가겠다고 했다.

난 속으로 무척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일이 많이 줄어든다고 피식 웃으면서

저 소금 단지를 어떻게 가져 가실 건지 가져가기 편하게 해 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못쓰는 타월을 소금 단지 밑에 넣어 타월의 한쪽을 잡아당기니 생각보다 쉽게 움직였는데

복도 저 끝에 사시는 분이 쉬어가면서 소금 단지를 자신의 집까지 가지고 가시는 것에 

난 그저 감탄하고는 다른 분께 저분의 연세를 아시냐고 하니 91세라고 하면서

말씀하신 분은 89세로 91세의 친구분 체력이 자기보다 좋다고 했다.


이렇게 여러분들이 계속 가져가니 갑자기 집안이 횅해져서 텅 빈 것 같아 보여

가져가 달라고 했지만 왠지 약탈당한 기분으로 허탈해졌는데

같이 계셨던 한분이 살 날도 얼마 없는데 소금 욕심을 내냐고...

하지만 할머니들의 그런 삶의 의욕이 생기를 만들고 그래서 건강하신 것 아닌가 했다.


이날 일본어 공부를 하는 친구의 남편을 매주 한번 만나 도왔는데 친구도 같이 나와서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소금 단지의 이야기를 하고 할머니들이 고맙게 가져가 주었다고 하니

친구 부부는 나를 보고 기가 차다며 그렇게 오래된 소금이면 약이라고 하면서

친구의 남편인 남자도 그게 왜 그런지 소금의 간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니 그렇게 무거워도 끌고 가신 거라며...


남자도 아는 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버지의 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