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한 시간의 긴장감

중년의 기운

by seungmom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를 입으로 떠들면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아무것도에 아이들의 끼니가 들어가 있다.

그 끼니에 정말 걱정도 미안함도 의무도 없는지 하지 않고 있는데...


아이들이 있는 미국에 와서 난 거의 매일 아침이라는 것을 건너뛰고

점심이라는 것에도 별 관심이 없고 저녁은 어떻게 때울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언제 나갔는지도 기억에 없는 아이들은 거하게 미국식 열량이 높은 점심을 먹어

저녁은 적게 먹어야 한다는 아이들의 말에 따라 준비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집에 있는 뭔가로 그저 때우면 된다고...


이러면서 나도 같이 빈곤한 끼니를 먹고 있다.

이곳에 와서 나를 위해 만든 음식으로 열심히 떠 올리려고 해도 기억나는 것은

한통의 포기김치를 사서 그것으로 두 번의 김치찌개를 만들어 두부로 사치를 부리고

간혹 김을 곁들이거나 정신이 들면 달걀말이를 해서 성찬을 즐겼다.


아이들이라도 뭔가 먹는다고 해 달라고 했다면 나도 이 부실함에서 구원을 받았을까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아이들이 뭔가 요구를 하지 않는 것에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신기한 것은 이런 시간을 계속 보내고 있으면서도 난 아무런 느낌이 없다.


작년 겨울에

아이들이 있는 미국에 왔을 때는 언제 다시 부산에 가게 될지 몰라 엄청 서둘렀다.

온통 머릿속은 부산의 병원과 간병인의 메시지로 뒤섞여

카톡이나 메시지에 점이 찍히면 불안이 전신을 무겁게 만들었는데

그러면서도 난 나의 아이들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저녁은 안 먹어도 된다는 아이들에게 꼬박꼬박 뭔가를 챙겨 내었다.


이곳에 오려고 이 시간을 내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것만으로도 아침에는 누워서라도 나가는 아이에게 손은 흔들어 줬고

미안한 마음에 저녁은 뭘 해 줄까 하는 고민을 심각하게 했었다.

다 큰 아이들이 생각 없이 늘어놓은 지저분한 집안을 치우면서도

그저 해 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에 고마워했었다.


그랬는데 왜 지금은 아무것도 하기가 싫은지

2주가 지났는데도 난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감각이 없다.

모든 것을 멈추더니 모성이라는 것도 같이 파업을 하고

이젠 나 라는 자신도 싸서 어디엔가 끼워 뒀는지 봐지지 않는다.


긍정적으로 나를 합리화하자면 난 4월부터 6월까지 막 달렸다.

이 나이에 달리기는 힘들었는데 그래도 마지막까지 쥐어짜면서 완성하니

내 안에 있던 에너지가 모두 방전이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난 다시 채우려고 이렇게 널브러져 있으며 당연히 이래도 되는데

그런데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도 되는 것인지...

정말 이러고 있다 보면 다시 예전의 내가 찾아오는 것인지...

이러고 있다가 아주 다른 내가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석 달 간의 긴장은 나를 엄청 몰아붙였다.

하루를 무사히 보내도 해야 하는 일은 다시 생겨나는데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그런 일들로 주저앉고 싶은 무게로 많이 힘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해 냈는지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이러고 있는 지금의 나는 누군가 한다.


난 어느 쪽의 나를 원하는 것인지

그 절박한 긴장감은 싫으면서도 그 긴장감이 주었던 생기는 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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