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380-800 비즈니스석

중년의 자기 합리화

by seungmom

나이가 들어 확실한 중고품으로 전락한 몸은
콧물이 쉴세 없이 나오고 그래서 재채기도 한없이 하는데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비행기 안에서는 앉아서 자야 하니 콧물 걱정 없이

집에서 앉아 잘 때보다 훨씬 편한 자세로 잘 수 있었다.


비행기가 Airbus A380-800 이기 전에도 내 키는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우리는 간혹 일반석의 표를 사서 비즈니스석에 앉아 갈 때가 있었는데

아이들과 같이 탔을 때엔 아이들은 다리를 펼 수 있다며 좋아했었지만

난 그때도 앞도 옆도 너무 남아서 도리어 불편했던 기억이 남아 있는데

비행기가 Airbus A380-800로 바뀌니 전체가 다 여유로워져서

일반석에서도 다리를 쭉 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앞의 공간이 있었다.


이런데 이런 내 키가 Airbus A380-800의 비즈니스석에 앉으니...


이번에도 일반석에 승객이 너무 많아 비즈니스석으로 옮기게 됐다며

항공권을 건네는데 얼떨결에 받고는 조금 불안했었다.

Airbus A380-800 비즈니스석은 처음이고 그게 얼마나 넓을건지...

예상대로 앞의 포켓에 둔 물건을 꺼내려면 의자에서 일어나야 하고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기대려면 엉덩이를 아예 옮겨야 기댈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날씬한 몸집도 아닌데 이 의자는 뭐든 운동을 시켰는데

단지 좋은 것은 침대처럼 누울 수 있어 다리 혈액 순환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래도 잠시 침대처럼 해서 누워있다가 얼른 안락의자 정도로 바꿨는데

사람들이 있는 장소에서 누워있다는 것이 엄청 어색했다.

듬성듬성 있는 좌석으로 너무 조용하니까 콧물을 훌쩍거리는 것도 신경 쓰이고

일반석에서도 친절하게 해 주는 서비스가 너무 황송했는데

여기에서는 그 몇 배가 되니 몸 둘 바를 몰라 정말 거북했었다.












뭐한다고 비행기 안에서 밥을 먹는데 식탁보까지 깔아야 하는지

밥그릇은 사기로 하늘에 떠 있는데 무게가 부담스럽지 않은지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의문 덩어리들로 개운하지가 않았는데

그래서 난 이런 것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다.


일반석에서는 자유롭게 일어나 서성이면서 운동도 하고

주위가 깜깜해지니 영화를 봐도 나만의 공간처럼 느껴져 좋았고

일반석에서의 식사는 일단 받으면 내 방식대로 혼자 알아서 먹는데

비즈니스석에서는 자꾸 와서 어떤지 뭐가 필요한지 물어봐 거북했다.


그래서 난 돈이 펑펑 남아돌아도 비즈니스석을 탈 일은 없을 것 같다.


아이들과 헤어져 허전함에 울적해졌는데 좌석 모두 꽉 찬 일반석은

나를 혼자로 내버려 두질 않아서 내가 가라앉는 것을 막았다.

난 확실하게 이런 세상이 나와 맞다는 것을 느꼈는데

이래서 내가 내 주위의 친구들과 맞추기 힘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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