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살기 좋은 이유

중년의 환경

by seungmom

이곳을 장만한 것은 작년 말이었는데 차분히 느껴 보는 것은 이제야 한다.

그래서인지 얼마나 잘 한 선택이었는지 하나씩 알아가면서 즐기는데...


이 거처는 어느 오피스텔도 마찬가지지만 주변에 살아가는 데 있어야 하는 것들이

카페도 식당도 옷가게도 은행도 극장도 찜질방도 운동하는 곳도 책방도

걸어서 5분 안에 큰 우체국도 있으며 재래시장도 있고 작은 백화점도 있다.

없는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호떡집부터 케이크집까지 다양한데

나는 거의 매일 탐험을 나가서 알지 못했던 다른 것이 있었다는 것을 찾아내고

며칠 전에는 없었던 것 같아 신기해하면서 이곳을 고른 나의 선택에 칭찬을 한다.


이런 곳이어서 그런지 젊은이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은 밤이 되어도 활발해서

저녁이 되어 걸어야겠다고 느껴지거나 포켓몬을 잡아야 할 때엔 서슴없이 나가는데

선선해진 날씨에 환하게 밝은 도심의 거리에는 저녁에도 젊은이들을 볼 수 있어서

이 흰머리의 중년은 보기만 해도 흐뭇해 쓸데없이 따라 신호등을 건너기도 한다.


이곳이 좋은 이유는 뭘까?


미국 LA의 아파트는 대학 주변이어서 젊은이가 많은데 그만큼 홈리스도 많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대학 바로 옆으로 이사를 하고 나서는 엄청 열심히 밖에 나갔었는데

언젠가부터 걷는 것을 관두게 되었다는 것을 이번에 갔을 때 느끼고 그 이유를 찾았다.

이제까지는 새로운 거리의 모습이나 대학의 젊은이들에 정신을 팔아서 몰랐는데

거리도 건물도 이젠 눈 감고도 찾아낼 정도가 되니 조심해야 하는 그들만 눈에 뜨였다.

홈리스 그들은 길 곳곳에서 서성이는데 스쳐 지나쳐도 냄새가 너무 심해서 한동안 힘들고

이들이 가게에 들어가 서성였는지 어쩌다 그 냄새를 상점 안에서도 맡게 되면

그 기억이 남아서 그 상점에 가야 할 일이 있어도 피하게 될 정도로 고통스러운데

이렇게 하나둘씩 피하는 곳과 피해야 하는 길이 늘어나니 나가서 걷고 싶은 생각이 싹 가신 것이다.

난 대학의 카페테리아에도 잘 가지 않게 되었는데 이들은 대학 안에도 와서 앉아 자기도 한다고

어느 의자에 앉았었는지 모른다며 아이들이 질색을 하면서 앉지도 만지지도 말라고 했다.

LA 날씨는 이들이 살기에 춥지도 않고 비도 거의 안 와서 딱 좋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그 유명하다고 하는 santa monica의 해변도 이젠 가지 않게 되었다.

그때도 그들은 있었을 텐데 왜 이제야 보이는지...

내가 변해서 나를 구속하게 만들었는데 그렇다고 알면서도 참기는 힘들고 고통스럽다.

거기에 죽을 때까지 나를 괴롭힐 것 같은 영어와 사고방식들도...


일본의 환경을 색으로 이야기하라면 무색인데 나 만의 집이 있는 곳은

산 중턱에 오래전부터 주거지로 고베 지진이 있었을 때에도 흔들림이 없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아무런 변화 없이 긴 세월을 살아왔던 주민들이 이제는 모두 어르신이 되었고

그 어르신들 덕분에 모든 것이 어르신의 움직이는 속도에 맞춰 버스도 느려졌는데

아직 젊은 나는 답답하면서 그들의 모습에서 나의 미래가 보여 그냥 기분이 무거워졌다.

너무 가라앉으면 안 된다고 고베에서 가장 번화한 산노미야의 거리도 걸었는데

거기에 가도 다들 자그마한 키에 왜소한 몸집으로 서로 눈치를 살피는 것에 간 보람이 없었다.

일본은 그냥 싫어하는 면도 있어서 더...


한국의 내가 있는 이곳의 분위기는 굉장히 활발하고 화려하고 큼직큼직한데

그래서인지 젊은 층의 사람들이 많고 그래서 그들을 위한 상점이나 카페가 많다.

그 젊은이들은 키도 크고 뽀얀 피부에 당당한 모습으로 너무 보기 좋아 흐뭇한데

고등학생인 것 같은 몇 명이 같이 서서 떠드는데 다들 큰 키가 비슷해 더 놀랬다.

저렇게 늘씬하게 키가 크면서 허벅지가 굵은 젊은이들이 저렇게 많다니 하면서

살짝 내 아들을 떠올리며 부럽다고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아들에게 미안해한다.

뽀얀 피부의 젊은이가 멋져서 따라 걸으며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남의 자식인데도 왜 뿌듯해지는지 이런 아이들이 정말 존재하는구나 했다.


세 나라를 돌아다니며 살다 보니 나쁜 습관으로 세 곳의 좋은 것만 내 것으로 하고

나쁜 것은 피하면서 내 삶과 상관없다는 듯이 도망 다니듯이 했었다.

일본은 일본대로의 모습이 있는 것이고 미국은 그대로 미국인 것으로

좋은 점도 나쁜 점도 항상 같이 하니 한 곳에서 쭉 살았다면 그냥 받아들였을 것 같은데

그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외면했던 것들이 나와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한국에서 살아보니 나쁜 것도 나에게 맞는 것은 즐겁다는 것을 알았다.


일단 내 나라라는 것이 나에게 점수를 후하게 쳐주라고 하는지

뭐든 다 곱게 봐지고 다정하게 느껴지며 웬만한 것에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힘들여 마음을 고치지 않아도 편하게 저절로 움직이는 이런 내가

타국에서 살면서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부셔서 조립을 했으니...


난 젊은이들과 같은 카페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버티는데

이들이 애를 쓰면서 하는 공부나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좋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풀어 나갈 수 있는 배짱이 있어 보이는데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 아이들은 저런 모습을 하고 있고

이 젊은이들이 자신을 알아가려고 하는 모습에서 나도 지지 않으려고 힘을 내게 된다.


환경은 참으로 많은 것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저녁 10시가 넘어서 오늘 먹은 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자고 나가 걷는데

여기저기서 들리는 젊은이들의 웃음에 나도 따라 들썩인다.

이 젊은이들 속에 끼어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곳은 나에게 최고가 된다.



친구들이 집들이를 하라고 했다.

이 말에 나도 한국 사람들이 하는 것들을 드디어 해 보는구나 하니

나도 진짜 한국인이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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