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운 타령
운이라는 것을 난 확실히 가진 것 같다.
뭐든 크게 마음먹지 않아도 좋은 쪽으로 생각하도록 흘러간다.
누가 날 모자라 보인다고 좀 덜 떨어진다고 하면
난 속으로 내가 특별해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구나 하고
공부의 성적에 대해서는 유치원을 2년씩이나 다녔던 머리여서
당연히 별 볼일이 없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어쩌다 잘하면 난 내가 수재 같아 보여 스스로 즐겼다.
이럴 수 있다는 것이 운이 좋아서 그런 것 아닌가...
이렇게 나를 내가 무던하게 보호하면서 잘 버틸 수 있었던 것이
내가 좋은 운을 가졌다는 증거다.
일본에서 나만큼이나 힘든 결혼생활을 한 이웃이 있었다.
이 젊은 이웃은 참아 내지를 못하고 힘들어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한국은 성지라면서 한국에 대한 말을 꺼냈는데
알고 보니 고통을 이기자고 통일교에 들어갔다고 했다.
거의 같은 고통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그곳에 가면 편하다고 하는데
집에 홀로 남겨져 있는 아이도 그렇고 그 이웃도 점점 말라가고 있었다.
그때 난 생각했었다.
난 왜 종교를 찾지 않았을까 하고...
덕분에 또 다른 구속을 피하고 이렇게 홀로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이 나에게 자유를 줄 건지를 찾아보니 경제력이었고
그래서 그 힘을 모으려고 기를 썼더니 절약하는 능력이 생겼는데
이것도 내가 태어나면서 가진 내 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의 주변에 휩쓸리지 않고 버텨냈던 것도 운이 좋은 것이다.
아들이 지금 엄청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말 열심히 살고 있는데 많이 욕심을 내는 것도 아닌데도
그래도 그것이 욕심인 것인지 허가서가 오질 않는다.
이것을 기다리는 몇 년 동안 엄청난 일들이 많아 모르고 지나갔는데
내가 편안해지니 아들의 일이 다시 크게 다가왔다.
이래서 사람 사는 일은 쉬운 것이 없다고 하는지
이럴 때 나에게 다른 뭔가 더 큰일이 터진다면
아들의 문제는 엄청 작고 견디기 쉬운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각자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처해진 일을 잊으려
물건을 자꾸 사들이든지 열심히 치장에 몰두한다든지
종교에 매달리던지 조상 묏자리 탓으로 돌리는 것 같은데...
난 무엇을 택하면 이 시련이 잘 지나갈까...
물건이나 치장에는 관심이 없고 종교는 흥미가 없다.
그리고 내 부모도 나를 관심 밖으로 두었는데
조상이라고 나를 관심 있게 보고 있을까 하니 정말 없다.
난 나의 운빨로
아들의 일이 부모의 문제 보단 작았다는 것을 생각해 봤다.
그럼 이제와 다시 커진 다는 것은 나의 착각이 아닌가 하고
아들은 그저 원하는 것이 안된다는 것으로 다른 것도 많다는 것을
아들의 운이 아직 열리지 않았는데 희망을 가졌었나 하며
혹시나 아들의 운은 이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래서 이렇게 긴 시간을 방황하게 만들어 스스로 찾아가라고
아들에게 더 나이 들어 방황하지 말라고 운명이 만든 게 아닌가 하고...
이렇게 생각이 흘러가도록 만들어 주는 것도 나의 운이라고
운이 있어 그런지 이럴 때도 난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도 희망은 놓지 않고 있다.
아직 두 달은 더 기다려 볼 수 있는 시간이 있으니
혹시나... 혹시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