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프라이데이

딸아이의 청바지

by seungmom

딸아이가 다니는 연구실은 복장에 대해서 매우 엄격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니기 시작한 연구실이 모두 의대 소속이어서

약물에 대한 것이나 질병에 관한 것 피에서 추출한 세포 등등...


복장이라는 것이 긴 바지에 신발은 발등을 덮어야 한다는 규정으로

언제나 긴 바지인 청바지에 발등을 덮고 편해야 하니 운동화가 되는데

그 운동화에 청바지는 연구실에 가면 하얀 긴 가운으로 덮어지니

색도 모양도 별 신경을 쓰지 않고 그저 걸칠 수 있는 거면 되는 것으로

혹시 모를 약품이 튀어서 탈색이 되어도 아깝지 않아야 한다고

딸아이는 가지고 다니는 가방에 지갑까지 모두 전용을 만들어 쓰고 있다.


조금 지나치게 조심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 그러지 말라고 말은 하지만

딸아이가 연구실을 나와서 약 10분간 걸어야 집까지 오는데

그 사이에 바람결에도 날라 갔을 것 같은 연구실의 냄새가

민감한 내 코를 기분 나쁘게 니글거리게 자극할 때엔 고개를 돌리는데

아이가 왜 이렇게 호들갑스럽게 야단하는지 알 것도 같고

이런 냄새 속에서 하루 종일 지내다 오는구나 하면 걱정도 되었다.


그래서 10년을 넘게 같은 곳은 아니지만 결국 대학교의 소속인 연구실에

같은 분야가 되어서 같은 건물의 5층에서 1층으로 다시 옆 건물로 다니니

그 긴 시간의 습관에는 점점 배짱만 생겨 정말 여자 아이인가 하는데...


연구실에서 돌아오면 바로 씻어야 하는데 입고 있던 옷과 가방은 격리시키고

벗어 놓은 운동화를 내가 정리한다고 손을 대면 고함을 지르면서 손을 씻으라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에서 냄새까지 모두 씻어 내야 안정을 찾는데

아침에는 느긋하게 뭔가를 먹으면서 드라마도 보면서 여유를 부리다가

가야 할 시간이 되면 얼굴은 그저 눈곱을 떼어내는 정도로 끝나고는

이를 닦고 옷을 챙겨 입고 가방을 어깨에 걸치면 반드시 다시 손을 씻고

현관을 나갈 때엔 자신의 운동화를 집으려고 휴지 한 장을 달라고 한다.

이러니 이 여자 아이...

이러니 이 딸아이의 복장은 점점 더 관심도 없이 소홀해지더니 도가 지나쳐

청바지의 무릎은 당연하고 엉덩이 부분도 늘어져 뒤에서 보면 가관인데

거기에 운동화도 구멍이 나기 일보 직전인데 그냥 신고 다닌다.


일 년에 두 번 우리는 전에 살던 한적한 곳의 치과에 검진을 받으러 다닌다.

계속 다녔던 곳이 마음 편하다고 한 시간을 운전해서 가야 하는 그곳을 가서는

LA의 도심에서는 디자인도 가격도 우리와 맞지 않아서 거북했던 것을 해결하는데

단순한 디자인에 저렴한 가격의 옷들과 신발 등을 일 년에 두 번 꼭 사면서

여벌로 청바지도 운동화도 사 두고 마음 편히 살았다.


그런데 저번에는 운전하는 아들의 사정으로 그 매장에 들리지 못했는데

딸은 인터넷으로 주문을 해도 된다고 같은 상표의 것은 안 입어 봐도 된다고 해서

알아서 주문을 하겠지 했던 것이 아이가 자꾸 미루어 일 년이 다 되었다.


그래서 뒤태가 정말 엉망인 딸아이의 바지에 대해서 한마디를 하지 못하는데

있는 바지가 다 그 모양이어서 바꿔 입을 것도 없는데 괜히 불편하게 만들 것 같아

그저 바지와 운동화를 사라고 쇼핑이라는 것을 하라고 잔소리를 했었다.


처음으로 딸은 이번 블랙 프라이데이를 이용하겠다며 기다리더니

뒤지고 뒤져서 청바지와 운동화를 고르는데 엄청 망설여서 보니

싸게 판다는데 거기에 또 더 저렴한 것을 찾느라고 힘을 빼고 있었다.


그리고는 청바지 석장과 운동화를 주문했다며 놀라지 말라고 하더니

마음에 드는 것이 있어서 13달러의 셔쓰를 하나 더 주문했다고 한다.

월급을 그래도 꽤나 받는 아이인데...


난 크게 웃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사고 싶은 것도 별로 없으니 너야 말로 부자인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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