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 썼던 교육 방법
난 두 아이의 엄마다.
딸아이는 집안의 머리 좋은 사람들과 같은 머리를 가졌고
아들아이는 내 머리보다는 나은 것 같지만 딸아이의 머리는 아니었다.
난 딸아이를 가르친 기억이 별로 없다.
이 아이는 주변에서 뭔가를 주어 듣고는 공부가 하고 싶다고 하더니
더하기를 가르친 적이 없는데 그대로 뺄셈도 곱셈도 해 냈다.
그러니까 이런 아이는 태어난 자체로 출발점이 다른 것인데
그걸 주변에서 칭찬을 하고 학교에서도 특별대접을 하니
아이는 자신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월감에 가득 찬 아이가 되었다.
아들을 보면서 내가 왜 부모에게 제외되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첫 아이로 태어난 딸은 세 살이 되니 저절로 글을 깨우치고 읽어서
나는 나와 엄청 다른 아이가 내 아이라는 것에 신기했었는데
둘째로 태어난 아들아이는 다른 쪽으로 많이 독특해
1+1을 과자로 하나가 있는데 또 하나를 주면 넌 몇 개를 가지고 있니?
이런 식으로 말로 하면 둘! 하는 아이가 글로 숫자로 하면 캄캄했다.
초 인내력을 발휘해서 1+1을 겨우 납득시키고 1+2+1은 하고 물으니
왜 더하기를 두 번 하냐고 이런 것은 모른다고 했는데
이때 이 아이와 내가 같았을 거라는 생각이 스쳤고
그랬다면 당연히 나는 부모의 관심 밖으로 밀렸겠구나 했다.
머리가 엄청 비상한 내 동생은 어깨너머로 글과 숫자를 모두 터득했는데
난 국민학교에 들어가서도 10까지 숫자를 세지 못했다고
이 이야기를 성적표 받아오는 날에는 되풀이하셨었다.
내 아이는 딸과 같은 아이만 있는 줄 알았는지 아무 생각 없다가
아들과 같은 아이도 내 아이 일수도 있을 수 있다는 것에 정신을 차리고
나는 내 아들을 나처럼 키우지는 않겠다고 다짐과 각오를 하고
아들에게 맞는 방법을 찾으려고 책을 찾아 읽었다.
나도 머리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나쁘지는 않으니
아들도 나와 같다면 아들 스스로 자신을 믿고 머리 쓰는 방법을 안다면
딸과 같은 머리가 아니어서 결과가 나쁘더라도 그냥 인정할 수만 있다면
다른 좋은 점도 많이 있으니 그걸 더 크게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면
이 아이는 나보다 더 삶이 힘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은 기를 죽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같은 자리에서 딸과 아들이 경쟁하지 않게 하고
무조건 감싸는 것도 피하고 무조건 칭찬하는 것도 조심했는데
이건 다 내가 해 봤던 경험으로 아이의 입장을 배려한 것이었다.
아이는 자신이 얼마나 답답한지 모른다는 것으로
그래서 자신은 그대로 자신으로 당당한데 그걸 이해받지 못하면
아이는 살아가면서 자신을 가장 쉽게 생각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의 행동에 결과에 맞는 칭찬을 하려고 무척 애를 썼는데
간혹 딸이 그런 칭찬에 한심한 표정을 지어 당황했었다.
아들은 딸에게 없는 연관성이나 감수성이 좋았고
감정의 표현이 풍부해서 한마디를 해도 부드럽게 따뜻했는데
그래서인지 주변에 친구들이 항상 많아서 아들을 지켜줬다.
아들이 학교를 다니고부터 난 성적을 아예 무시했는데
다행히 아이도 성적이 뭔지 별 신경을 쓰지 않아서
시험을 치면 무조건 동그라미가 몇 개인지에 칭찬을 했고
선생님도 틀린 것은 표시를 하지 않아 도움이 되었다.
나는 공부는 중요해도 시험이 대수인가 하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그저 매일 웃는 얼굴로 학교에 가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는데
그래도 미국으로 와서 중학교에 올라가니 살짝 성적에 신경이 쓰이는지
아들의 표정이 밝지 않아 그때부터 같이 앉아 공부를 했다.
그게 스무고개 같은 방식인데
난 모른다는 전제로 계속 질문을 하면서 아이가 스스로 외우게 될 때까지
왜 그렇게 된 거라니 내가 알기에는 다르다고 들었는데 하면서 알려 달라고 하거나
발음이 그게 맞는 거라니 하면서 그 철자의 발음은 어디로 간 거니 등등
내가 모른다고 자꾸 묻다가 보면 나에게 설명을 하느라고 찾아보면서 외워지고
그렇게 외운 것이 시험에라도 나오면 자신의 성과에 들떠 스스로 최고가 되었다.
이렇게 조금씩 나아진 공부는 지겹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도 도전을 하고 있는데
딸아이는 항상 최고였고 최고가 아니면 만족이 안되어서 힘들어했지만
아들은 매번 조금씩 나아지는 것에 환호하고 실망을 해도 스스로 다음이 있다고 했다.
아마도 아들은 내가 모르는 척 자꾸 질문을 하는 이유를 지금은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난 이 방법으로 20년 이상을 살아와 습관적으로 이런 말투가 되어 곤란할 때가 많다.
내가 모르는 척이 아니라 정말 몰라 묻는데 아들은 잘 알고 있다며 말을 끊고
난 관심도 없는 분야인데 아들이 나를 붙들고 설명을 하기 시작하면 막지를 못한다.
학술지에나 나오는 것을 아들은 설명을 하는데 내가 모른다고 관심도 없다고 하면
잘 듣지 않아서 그런다고 성의가 없다고 야단이다.
그래서 아들과 나는 공유하는 추억이 아주 많다.
공부를 해 가면서 조금이라도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깨우치면 나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고등학교에 올라가 역사가 하나의 시대와 다른 하나의 시대가 연관이 있더라고 하면서
신비로운 세계를 본 듯한 얼굴로 떠드는 데 난 그 얼굴에 대고 아무 말도 못 했었다.
그때의 표정을 지금도 아들은 간혹 나에게 보여 주는데
이제는 더 넓은 분야에서 느끼는 것을 새로워하면서 이래서 사는 재미가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