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소원성취
일본이 어떤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편드는 사람은 없겠지 한다.
이 바이러스가 일본의 나라와 국민의 인간성에 대해
예의를 차리면서 뒷북치는 말투와 의리도 없는 정의에 대해
잘 포장되어 있던 본성이 하나씩 하나씩 드러나게 했는데
아직도 일본을 예의 바른 나라로 보는 한국인은 없을 거라고 믿는다.
이 상황에도 일본은 스스로 앞뒤가 맞지 않는 말로 합리화를 하는데
검사를 많이 하지 않았던 이유가 중병 환자와 병원을 위해서 라고
중병이 되어진 사람은 중요하고 이제 막 걸린 사람은 알아서 하라고
치료를 받으려면 반드시 중병이 되어야 한다는 말로 들리는데
필요에 의해 확진자 숫자를 줄이려고 했다면 앞뒤는 맞지만
나라가 국민을 뭘로 생각하는지 그런 국민들은 느끼는 것도 없다.
지금은 왕따가 되지 않으려고 확진자가 행선지를 말하지 않는다는데
일본인의 특징이 잘 느껴져 일본인이라면 당연하다고 끄덕여졌다.
그래서 지금은 얼마나 속이 후련한지 날아갈 것 같다.
이젠 나에게 일본에서 사니까 좋지요 하면서 묻는 사람은 없을 거고
이런 질문에 난 거품을 물고 일본이 어떤지 떠들지 않아도 되고
눈빛까지 일본이 좋아요 하는 사람에게 화를 참지 않아도 되니
지금 난 몇십 년 쌓였던 불편한 울화를 날려 보내고 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일본에 대해 나에게 말을 꺼내지 말라고
나와 빨리 멀어지려면 일본이 좋다는 한마디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래도 그냥 불쑥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일본이 그래도... 하면서 나오면
몇십 분을 얼굴을 붉혀가면서 성토하는 내 목소리는 커지고 갈라지는데
그러고 나면 나도 듣는 이도 진이 빠져 회복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난 그 몇십 분간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지는 기억들을 떠올리는데
일본에 살면서 느꼈던 우익 단체들의 찢어질 듯한 스피커의 고성과
어제 여럿이 같이 즐겁게 떠들었던 사람이 다음날엔 모르는 사람이 되고
전철에서 한국 책을 읽고 있었더니 너 조선 놈이냐 하고 시비를 걸고
내 발음으로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말투부터 달라져
교환이 된다고 했던 것도 안된다고 해서 백화점에서 투쟁도 하고
은행에서는 한국인인데 무슨 돈이냐는 의심에 해명을 해야 했다.
집 계약을 했는데 윗집 옆집에서 한국인이 들어오는 것은 싫다고
난 계약을 했으니 살겠다고 하니 건물주가 그러지 말아 달라고 빌었다.
나를 만난 적도 없는 일본인은 내가 한국인이어서 지저분하고 더럽다고
한국음식은 마늘냄새와 된장냄새가 나서 한건물에서 살 수 없다고 했단다.
어쩌다 만난 쫌 있어 보이는 일본인이 대뜸 나에게 하는 말이
한국인이니 잘 봐주어야 할 텐데 도울 일이 있으면 말해요 하는데
언제 봤다고 날 봐주고 말고인지 그렇게 도와야 하는 이유가 있냐고 하니
그냥 불쌍하다고 가여우니 보호해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일들은 모두 2000년 이전에 겪은 일인데 지금은 다를까...
그래서인지 난 일본 사람을 처음부터 좋게 보려고 하지 않는다.
나도 그저 예의만 차리면서 몇 번을 만나면서 말투를 확인하고
생각과 말과 행동이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알아내는데
거의가 말과 행동은 예의로서는 완벽한 일치를 하지만
생각과 의도와 이익에 대해서는 완전하게 따로따로인데
본인은 이것을 느끼고 알면서도 이익을 좇아서 하는 짓인지
아무 생각이 없이 그저 이익에 예의만 차려지면 된다고 하는지
한국인으로 이해를 해 보자고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어렵다.
내가 그동안 이런 나라에서 살아왔었다.
지금은 나의 나라에서 일본의 본모습을 알게 된 것 같아 속이 후련하다.
일본을 미워하는 마음도 힘이 들어 작은 희망이라도 가지자고
미래의 일본을 이끌어 갈 지금 일본의 10대들에 희망을 걸었는데
10대가 보는 교과서를 저렇게 만들어 가르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본능처럼 되어 버린 한국을 무시하는 태도에 영토 문제까지
양심이라는 것도 때때로 색깔을 바꾸는데 어릴 적부터 세뇌되었다면
증명이 되는 명백한 사실도 아니라고 역사도 바꾸는 국민과 국가인데
일본인들의 민족성으로 자신들의 잘못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으니
그렇다면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