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닝 가위를 꺼냈다.

미국에서

by seungmom

바이러스가 뭐든 예전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 같다.


딸아이는 작년 11월에 머리를 자르고 내가 오면 할 거라고 미뤘다는데

숱이 많아 묵직한 머리가 더워지니 풍성한 머리가 힘든지 짜증을 냈다.

내가 오자마자 미장원에 갈걸 그랬다며 머리를 감을 때마다 후회를 하는데

길이가 있어서 그런지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진다고 해서 걱정이 되었다.

아들의 머리는 조금 양호한 편으로 항상 짧게 잘랐던 습관에 그럭저럭이지만

내 머리도 매번 부산을 떠나면서 잘랐던 것을 하지 않아 엄청 풍성하게 되었다.













이 상태로 바이러스가 잠잠해질 때까지 견디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처음엔 마스크를 쓰고 미장원에 앉아 있는다면 하는 생각을 해 봤는데

예뻐지려는 것도 아닌데 생명을 담보로 해야 하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고

아이들도 머리에 짜증은 나면서도 미장원에 갈까 하면 대답을 안 했다.


선선한 날씨가 며칠 사이에 30도 가까이 올라가 결국 에어컨을 틀어 놨는데

집에서 지내 답답했던 기분에 이 기온이 불을 붙여 놨는지 뭐라도 해야 한다고

멈춰있는 듯이 꼼짝을 안 했던 머리가 움직이더니 틴닝 가위를 떠올리고

거의 10년을 쓰지 않아 어디에 두었는지 가물거리는 기억도 없는 것을 찾았다.


딸아이에게 집에서 머리숱을 치자고 하니 살짝 놀라는 눈치였다.

나는 그 눈빛에 긴장을 해 스타일은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머리숱은 칠 수 있다고

예전엔 미용실에 두 번 갈 것을 한 번으로 줄이고 한 번은 집에서 머리숱을 쳤다고 하니

그제야 생각이 나는지 그럼 해 보자고 마음이 아닌 입으로 대답을 했다.


난 돈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도 있고 미용실에서 기다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싫어

미용실 하는 지인을 통해 신용이 되는 멋진 틴닝 가위를 사두었었는데

몇 달이 지나 풍성해진 머리숱을 그동안 미용실에서 주워들은 토막토막의 지식으로

전문 미용사가 잘라준 머리 전체의 모양은 철저히 유지하면서 머리숱만 치는데

내 머리를 세면대의 거울을 보면서 쳐낸 것을 보더니 두 아이다 좋다고 했다.


딸아이 표정을 보면서 나도 안심이 되어 조금은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딸아이 머리숱은 조금씩 쳐낸 것을 손으로 쓸어내리니 겁이 나도록 많았는데

딸은 자신의 뒷머리카락을 층으로 나눠하도록 부분의 머리카락을 잡아줘

덕분에 차분하게 어디를 얼마나 했는지 이렇게 하면 얼마나 줄어들 건지

그럼 머리 모양이 어떻게 될 건지 나름 상상을 해 가면서 정말 한가득 쳐냈다.


잘린 딸아이의 머리카락을 잡아보니 두 손으로도 넘치게 한가득이었는데

미장원의 커트보를 대신해서 쓴 보자기를 털어내고 흩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모으며

샤워를 하고 있는 딸이 어떤 표정으로 나올 건지에 기대와 긴장으로 치우고 있으니

딸이 머리카락이 확 줄어서 샴푸 하는데 놀랬다고 잘린 머리카락이 엄청 나왔다고

머리에 감은 타월을 풀지 않고 딸은 머리카락의 양에 대해서만 떠들었다.

살짝살짝 걱정이 되어 타월을 언제 풀 건지 그것만 신경 쓰여 힐끔거렸는데

딸아이가 어깨로 내려오는 머리가 시원해 보여 머리 모양이 마음에 든다고 한다.


살 떨리게 망치면 어쩌나 했는데...

바이러스가 만든 이 고비가 안 쓰던 도구까지 쓰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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