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19! 집에서 보낸 3주

미국 LA에서

by seungmom

3월 11일부터 어수선하더니 16일 학교를 닫아 버릴 거라는 말이 나오고

그래서 17일 딸아이는 급히 연구실에 가서 집에서도 일을 할 수 있도록

이것저것 챙겨야 한다더니 나가기 싫어 주저하는 아이를 위해

나도 살 것이 있다고 같이 집을 나섰는데 길에는 아직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아무도 마스크를 하지 않아서 서로 지나치지 않게 피하면서

빈 선반이 많아 썰렁해진 마켓 안에서도 사람을 피해 빙빙 둘러 다녔다.



3월 18일부터 24일까지 첫 주에는


아이들은 일을 하러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것에 들떠 있는데

나는 나가지만 않으면 안전하니까 막연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면역을 위해 인삼액을 마셔가면서 두 끼니는 푸짐하게 잘 챙겨 먹었다.


아이들은 휴가를 받은 것 같은 기분으로 보고 싶었던 드라마도 보고

조금씩 하던 게임을 공부하듯이 이것저것 뒤져가면서 몰두하는데

이 시대에는 게임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어서 권장은 못해도

게임하는 아이들에게 사과도 깎아다 주면서 눈은 아끼면서 하라고 했다.


K타운의 국밥이 먹고 싶다고 하는 딸아이의 소원을 위해서

나는 한국 마켓에 먼저 내리고 둘은 전화로 주문한 것을 받으러 갔더니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여기까지 와서 고맙다며 수정과도 줬다고 한다.

나를 데리러 다시 마켓에 왔다고 하는 전화에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한 시간 후에나 장을 다 보고 가득한 카트를 끌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마켓의 분위기가 너무 저돌적으로 식품을 사들이는 사람들로 가득해

나는 내가 사야 하는 것보단 사람들이 사들이는 것에 더 정신이 팔려서

원하는 것은 다 샀는지 걱정을 하면서도 신경 써서 챙길 마음도 없고

사야 하는 것이 떠올라도 그 마켓 속으로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덕분에 냉장고는 터질 정도가 되어 팩과 용기를 버려서 부피를 줄이고

당장 해 두면 부피가 줄어들 것 같은 김치찌개는 미리 만들었다.


매일매일 어렵게 사 온 것을 상하기 전에 알뜰히 소중하게 써야 한다고

열심히 만들어 먹였는데 다행히도 지겹지 않게 메뉴가 떠올랐다.



3월 25일부터 31일까지 두 번째 주


아이들의 일상은 게임 마니아처럼 경지에 오른 모습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우유와 두툼한 식빵과 달걀이 간당간당해지고

살짝 걱정이 되는 화장지도 있어서 근처의 Target이라는 큰 마켓에 갔었다.

듬성듬성 이 아닌 아예 싹 비어버린 선반을 보고 이 정도였구나 하는 생각에

아직도 내가 느슨했구나 하는 위기감으로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나 급하게 쓸어 갔는지 선반에 남은 식품들은 거의 찌꺼기 수준으로

그것도 종류별도 아니고 누군가가 들었다가 버렸다는 기분이 들게 하는

그 분위기는 이런 게 전쟁통이라는 것일까 하는 삭막한 상상을 하도록 했다.


이곳은 아무도 마스크를 하고 있지 않아서 하기가 조심스러운데

흰머리의 동양인이 마스크까지 하고 있어서 그런지 젊은이가 슬그머니 피했다.


31일 다시 국밥이 먹고 싶다며 저번에 순대국밥에 따라온 순대가 엄청 맛있어서

이번엔 순대를 아쉽지 않게 따로 사자고 전화에 가격에 개수를 물어보니

아주머니가 망설이는 딸아이에게 그냥 큰 것으로 정해 버렸다며 좋아했다.

이번에도 난 한국 마켓에서 장을 보겠다고 하니 아이들은 알아서 늦게 오겠다고 해

나도 느긋하게 장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좋았는데 막상 마켓에는 물건이 별로 없었다.


마켓의 물건은 두부나 김치 같은 적당한 가격의 식품이 먼저 빠져 버리고

고기에서 저렴한 것으로 돼지고기는 아예 한팩도 없는데 소고기는 종류대로 있었다.

사라졌던 달걀이 이번 주에는 한 사람이 한팩만 사도록 되어 있었는데

다들 달걀은 삶아 먹는지 식용유는 종류도 양도 그대로 수북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그런데 쌀을 몇 포대씩 사 가는 사람이 있어 계산을 하면서 왜들 저렇게 사냐고 하니

저렇게 사들이는 사람들은 거의 중국인이라고 했다.


미국의 한국 식품은 배가 들어온 것에 따라 종류도 양도 들쑥날쑥해지는데

이 시국이어서 통관 절차를 제때 받기가 힘들어 질지도 모르고 운송도 그렇다고 해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만들어 두고 갈 반찬들을 미리 만들어 두자고 재료를 샀는데

그래도 한국 마켓에는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마음 편히 장을 봤다.

거기에 마침 한국산 화장지 32개짜리가 마켓으로 옮겨져 진열대에 올려지는데

그때의 기쁨은 복권에 당첨된 것과 같았다.



4월 1일부터 7일까지 세 번째 주에는


아이들은 여전히 게임에 열심이다.

그런데 두 아이 다 체중이 확 늘어났다면서 운동을 해야 한다고

아들은 집에서도 신을 수 있는 신을 신고 동영상을 보면서 땀을 흘리고

딸은 한나절 요가복을 입고 매트 위에서 운동을 하며 뱃살에 신경을 썼다.

하루에 한 끼만 제대로 먹고 나머진 셰이크나 아사이볼을 만들어 먹겠다고 하는데

갑자기 이렇게 되니 잔뜩 사 온 야채가 걱정이 되었다.


Target에서 파는 우유를 사러 갔더니 2주일 만에 달걀과 빵이 들어와 있었다.

여기에서도 나만 마켓에 들어가 사는 것으로 아이들은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점점 걱정을 많이 하는 딸아이가 오전 중에 가야 사람이 적다고 해서 왔더니

사람 수를 제한해서 마트 안으로 들여보내는 직원도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당당하게 마스크를 쓰고 들어가 보니 살벌했던 선반이 잘 정돈이 되었고

물건들도 다양하게 넉넉하게 진열되어 있어 예전의 모습이 보였다.

마트 직원들도 계속 카트의 손잡이와 냉동칸의 손잡이를 소독하고 다녔는데

마스크의 의미가 신분을 속이려는 것이 아니고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알려져

엉뚱한 피해를 입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나를 편하게 해 줬다.


먹는 양이 확 줄어들어 사러 나가야 하는 모험도 줄었다.



이제 한국에서부터 시작하면 석 달을 조심하면서 살았다.

그래도 언젠가는 예전으로 돌아갈 거라는 기대가 있었는지

그게...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힘들 거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니

나에게도 조금씩 쌓인 스트레스가 있었는지 갑갑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렇다고 내가 돌아다니는 체질도 아니었는데 뭐가 답답한 것인지

머리를 자르고 싶다는 딸아이 말에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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