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버리는 습관
아마도 자가격리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 시간은 뭔가 익숙해 지기에는 짧은 것 같은 시간으로
뭔가를 시작해서 끝을 보기에는 길지 않았던 그런 시간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난 소소한 것들에 길들여져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었다.
이런 건 그동안 가지고 있던 뛰어난 나의 정리 습관도 있지만
그래도 언제나 작정을 하고 정리하는 일을 벌였던 것과는 다르게
지금은 작은 것 하나라도 바로바로 제자리에 넣어 미루지 않는데
내가 의식을 해서 하는 것보단 무의식에서도 움직여진다는 것이
또 쓸지도 모르는데 하는 망설임 없이 일단은 넣어 두는 것에서
움직일 일이 점점 줄어드는 이 나이에 꼼지락거리게 만들어 주었다.
이 정신은 휴대폰 통화 기록이나 문자 등에서도 쓰이고 있어
언젠가는 이 번호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며 버리는 것을 주저했는데
그저 막연하게 망설이면서 놔두었던 것들을 제대로 보려고 노력을 하며
언제 때의 것들인지 왜 그땐 버리지 못했는지 지나간 날의 나를 보도록 했다.
거의 모든 것은 딱 16년 여름부터 그대로 다 보존되어 있었다.
말이 보존이지 그대로 방치 수준으로 메일로 오는 가스 전기등의 고지서는
가계부에 기록을 하고 나면 버렸었는데 몇 년 치가 그대로 있었다.
메일을 정리하다가 알게 된 것은 가계부 기록에 구멍이 엄청 많다는 것으로
정확하게 16년 8월부터 모든 기록들이 나중으로 미뤄졌다는 것을 알았다.
메일도 씀씀이에 증명이 되는 영수증 등도 사진으로 남겨져 있었는데
그래도 그 많은 것들을 년도 별로 파일을 만들어 저장해 두었다는 것이
언젠가는 제대로 해 둘 거라고 생각을 했었던 것 같은데 난 잊고 있었다.
거의 3년을 비 이상적으로 완벽하게 기록 보존해야 하는 다른 뭔가가 있어
내 일에서는 뒤로 뒤로 미뤘던 것이 이렇게 많은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이제야 내 행동이 민첩해져서 이 작은 공간이 산뜻해진다고 흐뭇해하다가
이 사실에 뒤퉁수를 맞은 것처럼 놀래서 도망가려는 정신을 붙잡아야 했다.
거의 3년간의 가계부 빈 곳을 4년 전의 메일을 찾아보면서 기록을 하고
그 3년 치의 메일을 한꺼번에 버리려니 왠지 허전해 손을 떨다가 또 미뤘는데
이 습관이 나를 지배하는 것에서 벗어나자고 용기를 내어 버려 버렸다.
처음은 전기 요금으로 다음은 가스요금 그리고 수도요금 등으로 기록을 마치고
일 년에 한 번 내는 DMV AAA 등의 기록도 하면서 메일 상자는 가벼워졌다.
내가 이렇게 뭘 많이 지니고 있다는 것에서 엄청나게 움켜쥐고 살았구나 하니
나는 죽어가면서 이런 것들에 치어서 빨리 눈을 감을 수 있겠나 했다.
홀가분하게 떠나야 하는데 여기저기 기념이라고 추억이라고 놔둔 것들도 있어
아이들이 이런 것들을 치우느라고 애를 쓰겠구나 하니 버려야 한다는 생각인데
왜 버리지 못하는지 내 마음을 읽어 보고 내가 떠나면 그 가치는 무엇이 될 건지
그래도 하며 아쉬우면 사진을 찍어 두고 마음을 달래면서 버리기고 했다.
이렇게 영수증도 메일도 그날그날 기록하고 버리자고 마음먹고 움직이니
내 기분이 가벼워졌는지 편안해졌는데 이 습관을 이대로 굳힌다면
점점 약해지고 흐릿해지는 내가 되는 날에도 습관으로 하고 있을 것 같고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나게 되더라도 홀가분하게 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