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색다른 체험 결과
28일 아침에 나의 자가격리가 끝났다.
27일 난 격리기간이 끝나는 것을 어떻게 맞이하게 될 건지 기대를 했는데
그저 28일이 되면 끝나는 거라고 하는 덤덤한 대답에 살짝 맥이 풀렸다.
처음 시작했던 때와는 다른 무게감에 이렇게 허무하게 마치는 거였나 하며
혼자서 지내더니 마치는 것도 혼자인가 했는데 문자가 왔다.
14일이라면 긴 시간인데 하면서도 그렇게 길다고 느끼지 못해서 그런지
격리인지 방콕인지 나에겐 별로 다르지 않았던 것에 뭘 마쳤는지
뭔가 거창하게 마쳤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게 해주는 것이 있었으면 했다.
난 덕분에 이 작은 공간을 더 편리하게 더 실용적으로 쓸 수 있도록 만들고
휴대폰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도록 훈련을 하게 되었는데
슈퍼에 하는 주문도 척척척 결제까지 일사천리로 해결이 되었다.
그러면서 이대로 집안에서 살 수 있다면 난 은둔형 외톨이처럼 되려나
이러다가 손가락 근육만 발달되고 나머진 모두 도태되려나 하며 웃었다.
28일이 지나 현관 밖으로 나가보려고 준비를 하는데
수없이 반복했던 습관이라는 것이 이렇게 빨리 허물어지는 것이었는지
가방에 뭘 넣어 다녔었는지 미국에서 돌아와 그대로 멈춰버린 생활 탓에
한국에서 쓰는 지갑도 아직 꺼내지 않아 그래서 카드를 어디에 두었었는지
매번 나갈 때면 넣어 다녔던 에코백도... 잠시 잠시 머뭇거리면서 찾아냈다.
뭘 입고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각자의 취향이니 하면서 아무거나로 하고
신은 안전하고 간편한 하나뿐인 운동화로 한동안 걷지 않았으니 조심하자고
얼굴은 마스크가 도와주니 이렇게 좋은 면도 있는 거구나 하면서
가방을 준비할 때보다 엄청 빠르게 챙겨 입고 현관을 나섰다.
미국에서도 현관을 나서면 손은 자유롭게 하면서 얼굴에만 대지 않으면 된다고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마트에서 장을 볼 때에도 신경을 쓰지 않았었는데
격리기간이 만들어 준 것인지 당장 엘리베이터의 스위치를 누루려니 망설여졌다.
머뭇거리면서 선뜻 누르지 못하는 나에게 난 왜 그러냐고 물었는데
환경이 바뀌고 바로 격리되어 있어서 그 전의 생활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미국으로 가기 전에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서 모든 것을 다 했던 거리가
서먹서먹하게 다가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해서 마치 관광하는 기분 같았는데
오랜만에 사람들 앞에서 걷는 걸음은 부자연스러워 너무 신경을 썼는지
결국 얼마 못 가서 뻐근해져 한참 동안 서서 다리를 풀어야 했었다.
격리라는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했다.
격리라는 것은 하고 있는 동안보다는 하고 나서가 더 힘들 수 있겠구나
격리는 사람을 바꾸려고 할 때 쓰이는 방법이 맞기는 한 거구나 하면서
생각 없이 간단하게 받아들여 지냈던 격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지금 내가 있는 부산의 해운대의 분위기는 LA Westwood와 너무 다르다.
부산역에서 집으로 오는 동안 보이는 사람들과 상점들이 너무 평화로워
코로나로 위기라는데 여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Westwood의 거리에는 사람이 확 사라지고 상점은 모두 문을 닫았는데
지금은 그 상점들이 모두 합판으로 입구와 진열장 등을 막아 더 살벌해졌다고
딸아이가 학교 연구실에 간혹 출근을 하면서 사진을 찍어 보냈다.
거기에 비하면 이곳은 정말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거리에서 느껴지는데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행동이 전과 같은 그런 분위기로 활발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이 평화로운 사람들의 움직임에 도리어 놀래
이렇게 지내도 되는 것을 왜 미국에서는 그렇게 힘들게 하는지
정보를 읽어 판단해 내는 능력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 보였다.
아직도 나가는 것에는 거부감이 많이 들어 나가야 하는 일에 머뭇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