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계산
얼마나 현명했는지 이래서 가성비는 꼭 따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주변의 직업인이 모두 의사여서 직업이 의사밖에 없다고 생각하는지
고등학생인 두 아이가 의사가 되겠다며 서로 의대를 가겠다고 하는데
그때 난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지도 않았지만(말로 하는 건 나도 할 수 있어서)
합격 통지서를 받아도 둘 다 의대 보낼 여력이 없다고 하니
아들은 자기가 남자니까 의대를 가야 한다고 우기고
딸은 동생보다 자신이 더 머리가 좋으니 의대를 가야 한다고 했었다.
이땐 진짜 둘 다 의대를 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고민도 했었는데...
이 아이들은 둘이 의논을 한 건지 대학을 의대 진학을 목표로 단계를 밟았는데
대학 4년을 보내면서 의과대학 예과 2년 과정(프리메디)을 신청해서 둘 다 마쳤다.
이 과정의 과목을 다 받아야 의대 대학원에 입학 원서를 낼 수 있는 자격을 얻는데
이런 과정이 있는 대학에 가려고 대학을 정할 때도 의대를 생각하면서 움직였다.
왜 의대를 가려는지 그저 오직 한길만을 바라보면서 공부했던 딸아이는
성적도 엄청 좋고 추천서도 빵빵해 의대 진학이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았는데
원하는 곳에서 허가서가 오지 않으니 2년을 도전해 보고는 그냥 주저앉았다.
처음부터 내가 가라고 했던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 관두는 것이 빨랐는데
지금은 의대 소속 연구실에서 당당하게 박사들보다 자신이 더 나은 것 같다며
박사 공부를 하라는 교수의 말에도 학식에서 박사들에게 밀리지 않는다고
아직도 꿈쩍을 하지 않는데 덕분에 연구실 경력은 찬란해졌다.
대학 때 같이 의대를 가겠다고 한 친구들이 의사가 되어 소식을 전했을 때
난 가슴을 조리며 아이의 표정을 살피면서 뭐라고 말해 주어야 하는지 바빴는데
아이는 덤덤하게 어느 직업이나 힘들고 바쁜 건 마찬가지 구나 하기에
같지는 않다고 너보다 많이 받는 만큼 책임져야 하는 것은 어마어마하다고 하니
아이는 그럼 지금 내 직업이 나에겐 딱인 것 같으네 했다.
다른 어떤 직업도 쉽지는 않겠지만 나는 의사의 직업이라는 것을 조금 아는데
아버지와 동생들이 의사였고 같이 살던 사람까지 의사여서 난 여러 방향으로
이 직업이 어떤지 의사인 당사자의 입장을 곁에서 보고 느꼈던 것 같은데
천성이 남을 위하고 보람된 일에 긍지를 가지고 머리가 좋고 끈기가 있다면
이 직업은 살 떨리는 고비를 넘기면서도 해 볼만 하다고 생각하지만
주변이나 본인이 그저 이 직업에 금전적이나 명함 덕을 보려고 한다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시작을 했다면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에서 그랬는지 아님 아버지는 의사인데 너는 뭐냐 라는 말이 싫었는지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너의 아버지가 의사다 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는 아버지를 보고 회사에 다닌다고
그래서 학교 선생님께도 그렇게 말을 했다고 하기에 눈썰미가 좋다고 한참을 웃었다.
아들은 성적에서 버거웠는데 대학을 마치면서 진로를 바꾸겠다고 했다.
결국 호기 좋게 의대를 갈 거라고 했던 두 아이들의 대화는 나의 기억에서만 남아 있고
아이들은 벌써 잊혀진 순간이 되었는지 아쉬움도 미련도 없이 잘 지내고 있다.
교육에도 가성비를 따져야 해서 일본에서도 학원은 보내지 않았고
미국에서는 고등학생 아이가 꼭 해야겠다는 영어 작문만 학원에 보내 주면서
학원비는 무엇을 포기하는 대신 지불하는지 알리고 대가를 찾으라고 했는데
학비는 부모니까 해 줘야 하지만 학원은 다른 문제라고 했었다.
고등학교 때 학비는 어떻게든 해 주겠다고 막막 등을 떠 받쳤다면 의대를 갔을까...
만약에 갔다면 의사가 되어 의사의 인생을 지치지 않고 잘해 낼 수 있었을까...
누구 말대로 꼭 가야 할 놈은 가지 말라고 해도 간다고 하던데
결국 가지 않았던 것은 가게 될 놈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동안 학원을 보내거나 하면서 의대를 목적으로 투자하지 않은 것이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자신의 길을 편안하게 선택하도록 만들어 준 것 같은데
부담 없이 앞만 보면서 자신들의 미래를 떠드는 두 아이들의 모습에 안심을 한다.
이건 내가 만들어 준 결과가 아니어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희망을 믿는 것 같고
나도 내가 뭔가를 해 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아이들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 걷고 있어
막연하게 부모라면 하게 되는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조금은 덜 하게 되었다.
그리고
덕분에 난 경제적인 여유를 가지게 되어 아이들에게 손 벌리는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아이들도 나도 서로 적당한 선에서 가성비를 따진 덕을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