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치아 지키기
금요일 저녁 어금니에 때워놓은 것이 달달한 간식을 먹다가 떨어졌다.
이 어금니 때운 것은 미국에서도 떨어져 한국에 가서 할 거라고
다니던 한국인 치과 의사에게 쓸만하면 그대로 붙여 달라고 했었는데
때워 놓은 것이 변형이 되지 않았고 이도 상하지 않아 붙여 준다며
한국에 가면 바로 하라고 했었지만 난 한동안 까먹고 있었다.
미국에서 우연하게 한국인 친구의 소개로 다니기 시작한 치과가
의사의 성향이 내가 원하는 것과 비슷하게 맞아서 믿고 다녔는데
10년을 이 치과 의사에게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다가 이사를 하고도
이 의사에게 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믿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68km의 거리를 한 시간 동안 운전을 해서 다시 10년간을 다니고 있다.
이 의사의 아들도 치대를 졸업하고 아버지와 같이 진료를 보게 되었는데
나의 아이들은 아들 의사가 더 부드럽게 진료해 준다고 아들 의사만 찾아
치과에서 사무를 보는 그 부인에게 그동안 잘 봐주셨는데 미안하다고 하니
다들 그런다고 하면서 아들이 인기가 생각보다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자식들 이야기도 나누면서 다녔던 치과로 일 년에 두 번은 꼭 검사를 받았는데
엄포를 주면서 무리해서 치료를 권하거나 치료비를 과하게 청구하지 않았다.
미국으로 가기 전 일본에서 사는 동안에는 의료보험도 되는 일본을 피하고
부산 서면에서 개업을 하셨던 아버지의 지인이신 아저씨 치과에 다녔었다.
이젠 얼굴도 까먹었지만 뭐든 설명을 찬찬히 해 주셨던 자상한 아저씨로
난 이 치과 의사 아저씨가 해 주셨던 것을 그대로 지금까지 믿고 지키고 있다.
이 아저씨가 하신 말씀으로 내 이빨 자체가 약하다고 잘 관리를 해야 하다며
내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다고 걱정을 하면 썩은 것은 아니니 그냥 쓰라고
이빨을 자꾸 건드리는 것보단 웬만하면 오래 쓰는 것이 좋다고 하시며
건드릴 때마다 갈아내야 하니까 조금 더 있다가 하자고 하셨었다.
미국에서 살다가 나와보니 아저씨의 치과가 없어져 얼마나 당황을 했는지
그래도 운 좋게 아저씨와 비슷한 타입의 치과 의사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난 일본에서 때운 것이 빠져버리면 바로 다음날 한국행 비행기를 탔었고
미국에서는 임시방편으로 해 달라고 해서 한국에 가는 날까지 버텼었다.
10년을 다닌 이 한국의 의사도 예전 아저씨처럼 되도록이면 건들지 말자는 식이다.
미국의 치과의사가 때워 놓은 것을 보더니 이렇게 얇게 때워 놨으니 잘 떨어진다며
오래 쓰도록 보통은 조금 더 깊이 파서 어느 정도의 두께를 만들어 때운다고 했다.
그 깊이를 만들려면 멀쩡한 부분도 갈아낸다는 것으로 그건 엄청 겁나는 일인데
멀쩡한 부분을 유지시켜주는 쪽으로 애써주는 이 한국의 의사가 더 믿게 되었고
내가 신뢰하는 이 의사는 마지막으로 할 수없어하는 것이 임플란트라고 했다.
월요일 달달한 간식을 먹다가 떨어져 나온 것을 잘 가지고 근처의 치과에 갔다.
코로나로 택시 타는 것도 꺼려져 주변에 걸어서 갈 수 있는 치과를 찾았는데
백병원에서 근무하다가 개업을 했다고 되어 있는 치과에 예약을 하고 찾아갔다.
한국에는 의료보험이 없다는 말을 하고 받은 종이 두장의 설문지를 마치니
어느 이빨이냐는 것도 묻지 않고 사진을 찍자며 내 머리통에 x선을 통과시켰다.
그것도 어느 이빨인지 상관없는 파노라마로 머리통을 삥 둘러서 x선을 쐈는데
의사는 서서 내가 가리키는 이빨을 보더니 이번엔 진짜 그 이빨만의 사진을 찍어
내 눈앞의 큰 모니터에 그 이빨을 내 손바닥만큼 이나 크게 확대해서 보여줬다.
계속 서서 이건 다시 때울 수가 없다며 바로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난 임플란트는 싫다고 하니 그럼 씌우는 것인데 하면서
씌우기에는 이빨이 너무 낮아서 잇몸을 잘라내야 한다고
그러고 아마도 신경치료도 해야 할 거라고 하면서
지금 이빨에는 금도 보인다고 하더니 서있던 그대로 가버렸다.
이때 내가 느끼는 기분은 임플란트를 한다고 해라 하는 압박이었다.
뭔가 하면서 의자에서 일어나니 떨어진 것을 건네는 간호원이 밖으로 안내를 하고
진료비를 내려고 카드를 건네니 다시 그 무시한 말을 또박또박 반복해 주었다.
잇몸을 잘라내고 신경 치료를 하는데 두 달이 넘게 걸린다고..
다들 한통속 같다는 생각으로 9층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다녔던 의사에게 전화를 해 상황 설명을 하니 일단 봐야 뭐라고 말을 한다고
내일 아침에 수술이 있으니 오후에 오라고 하면서 어느 치과냐고 물었다.
쿵쾅거리는 마음을 잡을 수가 없어 아들에게 전화로 상황을 알리니
아들 말이 와! 치과에서 들을 수 있는 말을 종합세트로 들었네 한다.
이 말에 한참을 웃고 나니 조금은 차분해져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생각하니
의사가 내 이빨을 자신의 이빨처럼 걱정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저 내 어금니는 임플란트 한 번으로 벌어 들일 수 있는 수입원일 뿐
내가 내 이빨을 지키려는 마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 더 화가 나는 것 같았다.
다음날 난 버스를 두 번씩 갈아타고 가는 것도 코로나로 걱정이 되어
택시를 타고 한마디도 안 하고 고맙다는 인사도 내려서 했다.
마스크를 썼으니 안심해도 된다는 의사 말에도 계속 마스크를 쓰고 있다가
의자에 누워 마스크를 벗었는데
이빨을 찬찬히 보더니 상하지도 않았고 금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서
조금 긁어내어 다시 본을 떠서 때우면 되겠다고 했다.
지금 난 본을 뜨고 파인 곳을 임시로 메꿔 놓은 상태로 지내고 있다.
전에는 그냥 먹다가 메꿔 놓은 것이 빠지면 달려가 다시 메워달라고 했지만
지금은 자꾸 갈 수 없어서 한쪽으로만 음식물을 씹느라고 무척 애를 쓰고 있는데
자연히 부드러운 것으로 천천히 씹게 되어서 이러다 조금 날씬해 질까 한다.
양심이라고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의사의 말에
미국에서 만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왔다는 치과의사가 생각났다.
이 치과 의사 부인은 2년에 5억을 벌어서 미국에 왔다는 말을 자랑으로 했는데
그 치과 의사는 어쩌다 나를 만나서 아직도 그 집에서 사세요 하더니
아이가 대학에 갔으니 차는 뭘로 사줄 거냐고 물었다.
옆에 있던 딸이 눈을 크게 떴는데 난 그럴 형편이 안된다고 하니
동생도 의사라고 하면서 그러고 사세요 하기에
남편도 의사인데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