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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mom Oct 11. 2022

bbb 통역봉사

중년이 살아 있음을 느끼려고

내가 일본 사람들을 위해서 살고 있는 듯해서 짜증이 났다.

아이들과 헤어져서 사는 시간이 나에게 어떤 시련을 줄지 몰라서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내가 시간을 허비할 수 있는 일을 만들자고

그 시간을 쓸 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 놓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혼자 지내게 되는 시간을 잘 메꿔야 했다.


내가 가진 능력을 모두 동원해서 내가 쓰일 곳을 찾았더니

아이들을 가르치는 재능 기부와 일본어 통역 봉사를 하게 되었다.

먼저 신청한 재능 기부에서 아무런 소식이 없어 다른 일을 찾다가

2010년 5월에 bbb 통역 봉사를 알게 되었고 얼른 신청을 했다.


신청을 하고 나니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을 텐데 하는 생각에

나에게도 기회가 올까 하니 더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는데

며칠 후에 허락을 한다고 온라인 교육을 들으라고 알려 왔을 때엔

얼마나 반가운지 내가 통역일을 한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내가 가장 잘하는 언어이니까 하면서 서슴없이 교육을 받았는데

그저 봉사하겠다는 마음만으로는 안 되는 뭔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들이 한국에 오거나 일본에 오게 되면 언제나 했던 일이었는데

어떤 기관에 소속이 되어서 하는 통역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처음 통역을 부탁한다는 전화를 받고는 너무 긴장을 했는지

일본 사람에게서 일본어를 듣고는 한국사람에게 전하면서

들었던 내용을 잘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말을 했는데

일본어를 하고 있다는 것에 놀래 얼른 한국말로 바꿨다.


이제는 이런 실수는 하지 않지만 처음에는 정말 엄청 떨었다.

이 통역봉사는 내가 일본어를 해야 한다는 마음의 준비도 없이

그냥 얼떨결에 전화가 오고 통역을 해 달라고 하니 당황하는데

그저 전화에서 들리는 음성뿐 표정도 주변 상황도 알 수가 없어서

그걸 이해하면서 듣고 전달해야 하는 것이 많이 어려웠다.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몰라 불안해하니 더욱더 버벅거린 것 같았다.

나 같은 이런 사람이 해도 되는 일인지 정말 많이 걱정을 했는데

이것도 몇 번을 경험하니 조금 차분해지고 요령이 붙었는지

전화가 오면 메모지를 꺼내면서 마음에 준비를 했다.


이젠 들은 말을 그대로 내 감정을 넣지 않고 전달할 수 있는데

마치면 큰 일을 해 낸 것 같은 뿌듯함으로 엄청난 만족감도 생겼다.

얼마나 잘한 일이냐고 내가 이런 선택을 한 것에 자랑스러웠는데

그게 점점 왜 통역을 한다고 했을까 하는 실망감으로 바꿨다.


거의 관광을 온 일본 사람들이 곤란한 상황이 되어 전화가 온다.

통역을 원하는 전화는 병원이나 경찰서나 택시 아저씨에게서 오는데

이 일본인들은 특권을 가진 듯 미안한 마음도 없어 보였다.

길 한가운데서 60이 다 된 엄마를 잃어버렸다고 하는데

그 길을 담당하는 파출소가 다르다는 말을 전하니 화를 내거나

왜 밤에 코로나 검사하는 곳이 없냐고 하는 말에는 확 짜증이 나서

내 성질대로 말을 하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되니 꾹 참았다.


그러니까 상황이 안 좋다는 건데 그래도 여긴 일본인에게는 외국이고

누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니니 이런 상황을 만든 자신을 탓해야 할 건데

병원 사람에게나 경찰관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말투가 듣기 싫었다.


이런 말투를 일본에 살면서도 듣기 싫어서 피하면서 살았는데

한국에서 살면서도 들어야 한다는 것은 봉사가 아니게 된 것이다.

통역을 긴장 없이 하게 되니 이런 감정까지 느끼게 되었는지

내가 일본 사람들을 위해서 살고 있는 듯해서 짜증이 났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언어가 왜 일본어 인지 그걸 탓하며

일본어를 잘한다는 것은 정말 쓸모가 없구나 했다.


이런 생각으로 한동안 많이 머뭇거렸는데

어느 날 내 나라에 대한 다큐를 보다가 생각이 달라졌다.

난 일본인을 위한 봉사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한국에 온 사람들이 이런 서비스를 받아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난다면 

한국이 달라 보일 거라고 그럼 나는 한국을 위한 일을 한 것이라고

이 작은 봉사에도 이렇게 마음이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렇게 내가 바라보는 방향을 바꿔서 내 마음이 편해지니

봉사하라고 오는 전화가 반가웠고 그래서 마치면 독립투사가 되었다.

건방지게 통역하는 사람에게 막말을 하는 일본인들도 간혹 있지만

버젓한 직장인인 한국 사람들은 꼭 고맙다고 수고하라고 했다.


정말 많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수고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 인사는 내가 아직은 쓸모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고

나에게 살아 있다는 것을 알려줘 나도 버젓한 직장인처럼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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