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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mom Jul 14. 2021

아들의 수영가방

중년의 쓰라린 기억

자려고 누웠는데 잠은 안 오고 생각만 자꾸 피어오르더니 아들이 생각나고

그때 얼른 아이를 편하게 해 줄걸 그랬는데 하면서 후회를 후회를 하는데

멍한 정신에 이젠 다 커서 30이 넘은 아이를 14살 때의 모습으로 보고 있다.


미국에 가서 집 근처에 있는 대학교 수영장에서 하는 수영 클럽에 보냈었다.

일본에서도 수영은 제법 잘했었고 학원은 안 보내도 수영장에는 아깝지 않다는 생각에

미국에 와서 알게 된 아들의 친구가 다닌다는 수영장에 아들도 다니고 싶다고 했다.

그곳은 종합 대학의 수영장으로 실내가 아니고 실외에 있는 것으로 엄청나게 컸는데 

학교를 마치고 가야 하는 저녁시간은 기온이 떨어져 물을 데운다고 해도 차갑다며

덕분에 몸을 데우자고 엄청 열나게 움직인다고 해서 많이 웃었던 기억이 있다.



미국이라는 곳에서 처음으로 하는 모든 일들은 어색하고 몰라서 많이 헤맸는데

수영장에 보내면서도 하나씩 터득해야 하는 일들이 있어 매번 긴장을 해야 했다.

수영장에서 지정한 수영복에 수영모자가 그걸 파는 매장은 다른 곳이어서

매장을 찾아가는 것도 일이었고 수영 가방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이것까지 하며

사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너무 비싸서 많은 고민을 해야 했었다.


그래도 실력이 제법 되어서 동네 시합에서 받은 기록으로 클럽에서 윗반으로 옮겨지고

그래서 조금씩 큰 규모의 시합을 다니게 되니 수영 가방이 절실하게 되었다.

괜한 사치는 아닌가 하다가 아이의 실력이 되니 사도 되는 것 아닌가 하면서 이유를 찾아

샀으면 하는 아들의 이름까지 새겨 넣은 거금의 수영 가방을 사게 되었다.

엄청 컸던 이 가방은 물에 젖은 수영복과 물안경은 매쉬로 된 포켓에 넣게 되어 있고

물이 많은 곳에 놔두어도 되게 한가운데는 방수로 되어 있어 타월이나 갈아입을 옷을 넣고

맨 밑에 따로 만들어진 칸은 슬리퍼를 넣어 두도록 되어 있는데 이건 꼭 필요했다.












어느 날 차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이가 오지 않아 나오는 다른 아이에게 물었더니 

아들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놀래 수영장으로 들어가 보니

저녁이 되면 기온이 확 떨어지는데 아이는 수영 팬티 한 장만 걸치고 떨고 있었다.

그 처량하고 어리석고 가엽고 불쌍한 그 모습 

그 모습은 내 기억에 콕 박혀서 잠이 안 오는 내 머릿속을 정신없이 휘젓고 다녔다.

난 그때 아이를 다구치며 잘 찾아봤냐며 두 번이나 다시 돌아가 찾아보게 했는데 

남자아이들 라커룸이어서 내가 직접 찾아볼 수 없었던 것에 더 안달을 한 것 같았다.

결국엔 여러 아이들이 같이 찾아 봐 줬는데도 코치에게 이야기를 했는데도 찾지 못하고 나니

그제야 내 아이가 눈에 들어와 다른 아이들이 가지고 있던 여벌의 옷을 빌려서 입히고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내내 걱정하는 아들에게 가져간 누군가에 대해 화를 내면서 

정신을 차린 나는 어른답게 행동해야 한다고 아들 탓은 아니라고 해 줬었다.


이 대목에서 왜 나는 아이가 떨면서 서 있던 그 장면만 떠올리는지 모르겠다.


왜 하필 아들의 가방을 가지고 갔을까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 봤었다.

가방이 새것이어서... 그래도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날 아들은 일본에서 큰 맘먹고 산 옷을 입고 갔었는데 그게 눈에 뜨였나...

아들이 그것을 미국에서 딱 한번 입었을 때 내가 찍어 놓은 사진이 있다.

난 그 사진만 보면 가방보단 이 옷이 더 아까웠다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멋져서

아마도 이 옷이 탐나서 가방을 들고 갔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내가 직접 찾아볼 수도 없어 더 분함이 남아 있는지 그 일이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아들의 모습에서는 가방이나 옷이 뭐라고 아이를 그렇게 괴롭혔을까 하면서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이의 충격도 나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텐데 하며

거의 20년 전의 일을 어제의 일처럼 자꾸 되씹어가면서 반성과 후회를 한다.


오지 않는 잠을 부르기에는 너무 머릿속이 복잡해져 잠은 포기를 하고

일어나 다시 노트북을 열고 멍한 머리에 자리 잡고 있는 생각들을 몰아내도록

영화를 보기로 했는데 영화 한 편은 나를 다른 세상으로 보냈는지 잠이 찾아왔다.


그 요란을 떨면서 잔 것 치고는 푹 잔 것 같이 깨어서 어제의 시련을 생각해 보았다.

남의 것을 가져간 그 아이는 그걸 쓰기는 했을까 하니 그러지 못했을 것 같고

그럼 버려졌다는 건데 하니 아깝다는 생각에 그럴 거면 왜 가져갔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아들의 모습을 떠올렸는데 새벽에 기억했던 것보단 덜 처량해져 보였다.

그때의 아이는 얼굴이 허옇게 되었을 만큼 큰 시련을 겪은 것인데 

그것은 그 아이의 인생에 많은 것을 가르치고 예방을 했을 거라고 

내 생각이 다른 쪽으로 나에게도 위로가 되도록 움직였다.


아이가 수영 가방이 없어 아쉬워하면서도 다시 사 달라는 말을 못 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면서도 두 달 정도를 버티면서 스스로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렸다.

가방이 없으니 무엇이 답답한지 그래서 어떻게 가방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서

내가 다시 사 주어야 하는 생각이 들도록 설득을 해 보라고 했다.

덕분에 아들은 형들이 라커룸에 두지 않고 수영장 옆 벤치 밑에 둔다는 것을 알아내

아들도 연습 도중에 한 번씩 가방을 보면서 확인을 해 두 번 다시 잃어버리지 않았다.

또 사줄 테니까 수영 연습에나 신경 쓰라고 하기엔 내가 너무 계산이 빠듯했고

자신의 물건을 소중하게 잘 지키는 일도 경제적인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생각은 해가 떠 있을 때 하라는 말이 이런 것인지

어젯밤과 지금의 나는 같은 것을 떠올리면서 엄청 다른 결론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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