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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mom Jan 10. 2022

딸아이의 미적 감각

중년의 흘러간 소질

나는 고등학교 때 제법 큰 미술 대회에서 최고상을 받았다고

중학교 때도 그림 그리는 대회에 나가면 꼬박꼬박 상을 받았다고 했다.

최고상을 받은 그림은 수채화였는데 힘 있는 터치에 색은 너무 맑다고

이런 그림은 처음이라면서 학교의 미술 선생님은 엄청 칭찬해 주셨다.

그러니까 그린 기억도 상을 받은 기억도 없는데 반복해서 들었던

미술 선생님의 칭찬만 내가 그림을 그렸었다는 것을 기억하게 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20년이 되어 처음 하는 여고 동창회 때

미술 선생님은 내 이름까지 기억하시며 미대에 갔지 하고 물으셨다.

아니라고 하니 선생님은 나를 미대에 보내라고 서너 번 집에 찾아와

엄마에게 꼭 미대에 보내라고 보내는 방법까지 알려 주셨다고 했다.

난 모든 것이 처음 듣는 말로 선생님이 집에 찾아왔었다는 말에 

엄마는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지 하는 궁금증보다는

내가 그렇게 실력이 있었나 하는 것에 더 신기했었다.


그 동창회를 마치고 집에 와 엄마 아버지가 다 계시는 곳에서

엄마에게 미술 선생님의 이야기를 물어보니 사실이라고 했는데

아버지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이셨다.

그날 서울 사는 친구에게 너무 늦으니 자고 가라고 같이 집에 왔는데 

그 친구가 거들면서 미술 선생님의 이야기를 신나게 전달하니

엄마는 내가 얼마나 잘 그렸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다.


상을 받은 내 그림을 교장실에 걸어 놓고 싶다고 연락이 왔었다고 했고

그래서 그 그림은 교장실에 걸려 있었는데 교육감이 보더니 탐이 난다고 

다시 엄마에게 연락이 와서 줘도 된다고 했다며 그 정도로 잘 그렸다고 했다.


난 그때 그 말을 하는 엄마의 표정을 지금도 기억한다.

난 이 모든 이야기를 처음 듣는 것이어서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았는데

그러는 동안 친구가 선생님은 꼭 미대에 갔을 거라고 믿고 계셨다고 하니

그제야 아버지는 그런 걸 왜 말하지 않았냐고 엄마에게 물었고

엄마가 당황해 하자 아버지는 공부를 해야지 하시며 자리를 뜨셨다.


이게 내가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는 증거가 되는 유일한 기억이다.


이건 항의를 하고 화를 내어도 될 일이었는데 난 그때도 조용히 넘어갔다.

공부도 못하는 게 그림은... 하는 말을 친구 앞에서는 듣고 싶지 않았는지

그냥 그랬었구나 하고 말았지만 속으로는 너무 기가 차서 한바탕 하고 싶었다.

나는 내가 잘 그리는지는 몰랐지만 그리는 것이 좋아서 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엄마가 단칼에 거절을 했고 아버지는 공부도 못하는 게 그림은... 하셨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그 정도로 잘 그린다는 것을 나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전하지 않고 없던 일처럼 넘어가기로 하셨던 것이 아닐까 하는데

내 친구가 떠드는 덕분에 자랑하고 싶은 엄마는 잠시 그때의 상황을 잊으시고

20년 전의 일을 상세히 이야기하고 말았다고 나는 지금도 그렇게 이해를...

나는 하나뿐인 딸이었다.


나에게도 하나뿐인 딸이 있다.

이 딸이 내 딸이어서 그런지 미적 감각이 제법 있고 그것들을 잘 써먹는다.

딸 자신은 어딘가에서 본 것을 흉내를 내면서 그려본 것들이라고 하면서

창작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것도 능력이고 재주라고 대단한 것이라고 했다.

글씨도 내 글씨에 비하면 정말 귀엽게 예쁘게 써서 언제나 부러워하는데

글 사이사이에 작게 그려 넣은 그림을 보면 나는 왜 이런 것을 할 수 없는지

언제나 딸아이의 솜씨에 감격을 하고는 그걸 고이고이 모아 두었다.


딸아이는 그 솜씨를 연구실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에도 썼는데

연구실 사람들에게 한 해의 마무리 인사로 매년 핸드크림을 선물하면서

작은 태그를 달았는데 그게 멋져 매년 달라지는 것을 한눈에 보라고

3년의 사진을 하나로 만들어 주니 딸아이가 색다르다고 좋아했다.


나는 내 딸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딸 자신이 알고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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