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배달 음식
생수를 사자고 나가서 겨우 한통을 들고 들어오더라도 운동이 된다고
되도록이면 배달은 하지 말자고 한국에 살기 시작하면서 마음을 먹었었다.
솜씨도 없는 내가 열심히 해 먹겠다는 것은 아니고 사 먹겠다는 것은 같은데
밖에 나가는 핑계를 만들어야 이 계절에 어떤 과일이 나오는지도 알 수 있고
주변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사람들의 옷차림은 어떤지 알게 될 거라고
그러면서 이곳저곳의 식당을 찾아내어 관광객처럼 즐기며 살자고 했다.
미국에서나 일본에서 한국 식당을 다니는 일은 각오가 필요했었다.
미국에서는 차를 타고 나가 주차비도 내야 하고 거기에 팁까지 줘야 하는데
그렇다고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는 만큼의 다양성은 부족해 아쉬움이 많았다.
그래도 미국 살이 10년 만에 LA로 와서는 한국음식에 대한 갈증은 해소가 되었지만
대신 언제나 차로 가득한 405와 10번 프리웨이에 지쳐서 K타운까지 가기가 힘들었다.
들뜬 기분으로 집을 떠나 프리웨이에서 한 시간 이상을 걷는 정도의 속도로 가다 보면
맛있는 음식으로 기대에 부풀었던 뱃속은 더 쓰리게 소리를 내야 했었다.
일본에 대해서는 별로 말할 것이 없다.
진짜 한국음식 맛을 아는 한국인은 그저 고기를 먹으러 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으로
다른 한국음식은 먹으면서도 이게 한국음식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만들어서
돈을 내고 먹는다는 것이 정말 바보 같아 점점 한국음식 사 먹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나마 야끼니꾸(焼肉)라는 고깃집에 가면 매운맛의 양념이 한국식 같아 좋았지만
그게 갈비 1인분에 달랑 고기 5점으로 가격은 역내에서 파는 우동 가격의 3배 이상인데
고기 한 점의 넓이가 건빵 두 개 정도로 그 고기 5점으로는 절대로 배가 부르지 않았다.
같이 먹는 캬베츠도 밥도 국도 김치도 다 따로 돈을 내야 하니까...
아무튼 이래서 한국에서 식당을 골라 다니는 이 호사에는 절대 만족으로
중년 여자가 자기 입에 들어가는 것도 만들지 않는다는 눈총에도 떳떳하게
혼자서 고깃집에서 쌈을 싸 먹고 2인분 이상 판다는 식당에도 앉아 먹었다.
매번 나가서 먹는 것은 아니지만 적당하게 때울 만한 것도 없을 때
미치도록 먹고 싶은 메뉴가 떠오르면 주저하지 않고 나가는데
옷을 챙겨 입고 나와 만보기를 켜 놓고 거리를 휘젓고 다니며
운동도 하면서 거리의 공기도 마셔가면서 한국의 삶을 즐겼다.
이렇게 지내던 나에게 코로나는 밖으로 나가는 것을 어렵게 만들더니
참을 수 없는 식욕은 절대로 하지 말자고 했던 배달 음식에 손을 대게 만들었다.
작년 5월 말에 요기요의 어플을 깔면서 노후의 준비를 하나 더 하는구나 했는데
늙어 나가서 사 먹는 일이 힘들어지면 해야지 했던 것을 당겨서 하게 되었다.
코로나 시대여서 비대면으로 하자고 배달이라는 것을 부탁하기로 했지만
배달해주시는 분과 만난다면 의미가 없어 그냥 놔두고 가세요 했는데
그럼 음식을 그대로 바닥에 두고 가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처음엔 바닥에 두었던 비닐 봉지만 잘 처리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는데
옆집 쓰레기가 밖에 나와 며칠간 방치되니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먹을 음식이 쓰레기와 같은 바닥에 놓인다는 것이 순간이어도 마음에 들지 않아
머리를 굴리면서 종이 상자를 놔둘까 했지만 항상 밖에 둘 수도 없는 일이라고
그때그때 현관밖에 놔뒀다가 현관 안으로 들여놓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그러면서도 현관이 좁아져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거의 한 달을 고민해서 코로나가 끝나도 쓸모가 있다면 하는 욕심까지 보태어
결정한 것이 대나무로 된 간의용 의자로 튼튼하기도 하고 접을 수도 있다는 것에
플라스틱에 비해서는 조금 가격은 비쌌지만 자연으로 쉽게 돌아가는 것으로 정했다.
배달 주문을 마치면 간의용 의자를 현관 밖에 내어 놓고 벨소리나 두드리는 소리에
비대면으로 문 앞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문을 열면서 무조건 큰소리로
현관 가까이에 엘리베이터가 있어 배달해 주시는 분들께 고맙습니다를 외치고
간이용 의자를 현관 안으로 넣어두는데 매번 잘 산 것 같다고 나를 칭찬한다.
이렇게 배달해 주시는 분들이 찍어서 보내주는 사진에도 멋지게 나왔다.
내가 먹을 음식의 품위 유지에 한몫을 하는 이 간이용 의자는
코로나 시대를 기억나게 만드는 유일한 물건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