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운전용 안경
며칠 전 이제는 버려야 하나 하면서 한 번도 쓰지 않은 안경을 들고서
이런 건 뭐하러 만들었을까 하며 그때의 나는 많이 어리석었구나 했다.
인생 처음의 안경이라는 것은 햇볕 차단용이었다.
햇볕이 강하면 미간이 찡그려져 10대 말부터 선글라스를 끼기 시작하고
그걸 햇볕이 강해 눈이 부신 날에는 남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쓰고 다녔다.
그땐 조금 건방지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걸 무시하고 쓰고 다녔던 덕분에
지금도 나는 쓸만한 눈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두 번째 안경은 30대 중반에 아이들의 한자를 봐주려고 맞춘 돋보기였다.
일본은 일본어에 한자도 있어 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배우게 되는데
아이들의 한자 숙제를 봐 주려니 한자에 있는 점이 확실하게 보이지 않아
미간을 찡그리고 그러다가 짜증이 나서 아이들의 글씨를 탓하고 있었다.
다들 40도 되기 전에 무슨 돋보기냐고 했지만 그런 생애 최초의 돋보기는
아이들이 성의 없이 살짝 찍어 놓은 점까지 확실하게 선명하게 보여줬는데
도수가 있는지 없는지 했던 그 돋보기는 나에게 신세계가 있다고 말했다.
내 눈은 생각보다 빨리 늙어 가는지 거의 2년마다 새 돋보기를 맞췄는데
젊었을 때 시력이 좋았던 사람일수록 노안은 빨리 온다고 하더니 정말 그랬다.
한국에 들릴 때마다 안경점에 가서 내 눈과 돋보기의 도수를 확인하고
조금이라도 달라졌다고 하면 얼른 새것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안경점에서 아직은 아니라고 거절을 하거나 안경테에는 돈을 들이지 말라고
돋보기는 무조건 가벼워야 한다며 정말 공짜에 가까운 안경테만 쓰도록 했다.
50이 넘어 길거리에서도 흐릿하게 보이는 부분이 있어 안경을 했는데
그게 걷다가 멈춰 서서 뭔가를 자세히 보려고 하면 잘 보여서 도움이 되었지만
안경을 끼고 움직이는 동안 나도 모르게 속이 울렁거리더니 멀미를 만들어
겁이 나서 거의 쓰지도 못했던 그 안경은 버리는 첫 안경이 되었다.
미국에서 운전할 때 표시판의 알파벳이 확실하지 않아 안경을 따로 만들었다.
50대 후반 오른쪽 눈에 약간의 난시가 생겨 먼 거리의 글씨가 선명하지 않아
차에만 놔두고 쓰는 것으로 안경을 했는데 이게 또다시 나를 신세계로 보냈다.
그동안 답답했던 것들이 그렇게 확실하게 잘 보인다는 것에 너무 황홀했는데
이 안경도 노안이 진행되는 것에 따라 바꿔야 해서 그동안 쓰면서 불편했던
선글라스를 쓰고 싶을 때엔 이 안경은 벗어야 한다는 것을 해결하기로 했다.
눈이 피곤한 날에는 낮에도 표시판이 선명하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선글라스를 빼고 이 안경만 쓰기에는 눈이 너무 부셔서 힘들었다.
그러니까 햇볕이 너무 강한 캘리포니아에서는 선글라스가 필수품이었는데
선명하게 보이는 안경을 포기하기에는 신세계 맛을 벌써 알아버린 탓에
어떤 때엔 그 맛을 잊지 못해서 두 개의 안경을 포개어 쓰고 운전을 했었다.
이걸 안경점에서 이야기하니 햇볕을 받으면 선글라스가 되는 것으로 하자고
이 말에 이게 일석이조라는 것이구나 하면서 얼른 그런 것으로 해 달라고 했다.
두 개를 포개어 쓰지 않아도 되고 차에 안경이 두 개나 있는데 그것도 하나로 되니
이거야 말로 또 다른 신세계로 들어가는구나 하면서 들뜨게 되었다.
헌데 막상 거금을 들여서 만든 안경이...
차 안에서는 햇볕이 강하게 들어와도 선루프를 열어도 안경에 색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잘못 만들어졌나 하면서 밖에 나가니 멋지게 내가 원했던 색으로 변해
그저 생각 없이 욕심만 부리다가 이런 사단을 만들었다고 후회를 했다.
그러니까 낮에는 선글라스에 난시용이 합해진 안경이 필요하고
밤에는 그냥 난시용 안경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 꼼수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