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정신력
피부는 눈에 보이게 늘어지고 푸석거리면서 간지럽다.
난 내가 늙었다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간지러운 기분만 들면 퍽퍽 긁었는데
계절이 다시 공포의 시간이 온다고 알려 주는지 다시 슬슬 간지러워진다.
겨울만 되는 생기는 건데 너무 건조해서 그렇다고 친구가 계속 처방을 알려줘
그대로 지키면서 세 번의 겨울을 무사히 보냈다.
그리니까 내가 35년 만에 한국에서 겨울을 보내면서 얻은 증상이었다.
18년의 첫겨울 어느 날 갑자기 그냥 양 옆구리에 두둘한 것이 생겼는데
그것을 자면서 나도 모르게 긁고 있었는지 또 어느 날 갑자기 벌겋게 되었다.
이미 손바닥보다 넓은 면적이 벌겋게 꽃이 피고 딱지도 앉아 있는 것을
서울 친구가 놀러 와서 보고는 건조해서 그렇다고 비누를 쓰지 말라고 했다.
그게 뭔 이상한 처방이냐고 하면서 나는 믿지 않고 대신 물로 많이 헹궜는데
그래도 자는 것 자체가 힘들어 지고는 친구의 말대로 했더니 더 심해지지 않았고
그러면서 긁지 않으려고 잠을 설치면서 지내다 보니 봄이 오고 싹 사라졌다.
19년의 겨울에도 난 약간의 붉은 꽃들을 보고서야 내가 긁었다는 것을 알았고
그때서야 작년의 고통이 생각나서 비누를 쓰지 않고 샤워를 하려고 애를 썼다.
사람은 뭐든 잘 적응하게 되어 있는지 처음엔 찜찜한 기분에 살짝 비누칠하고
얼른 물로 길게 헹궜는데 그래도 심해지는 것 같아 그 부분만 비누칠을 안 하다가
아예 몸에는 접치는 부분만 비누칠하고 나머지는 손으로 살살 비비는 수준으로
물 샤워를 했는데 그 찜찜함이 점점 당연한 것으로 생활이 되었다.
그동안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아도 되었던 이유는 뭔가 하고 생각해 보니
겨울이 추운 일본은 습기도 지나치게 많아서 다들 습진이 생긴다고 했는데
나는 건조한 나라에서 살던 사람이어서 그랬는지 습진 걱정은 안 해도 되었다.
미국에서는 겨울이라는 계절이 거의 없는 곳에서 살아 약간 건조하기는 했지만
온돌이라는 것이 없어 집안이 건조해질 일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다 좋을 수는 없다는 것인데
일본에서 외투보다 더 두툼한 옷을 입고 지내야 했던 겨울 환경을 생각하면
차라리 간지러움을 참고 반팔로도 지낼 수 있는 한국의 겨울 살이가 낫다고
하루 종일 껴입고 그래서 둔해진 감각으로 멍하게 시간만 때웠던 그때보다는
지금이 훨씬 사람다우니까 간지러움 정도는 충분한 대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20년의 겨울에는 19년의 겨울보다 정신을 빨리 차렸지만
약간 색이 보일 때쯤에 긁고 있다는 것을 알고 긁지 말자고 손톱도 바짝 깎았다.
그런데 21년 지금 나는 3년의 경험으로 많이 똑똑해졌는지 긁는 것에 대해서
정신적으로 극복을 해야 한다고 나에게 맞는 나만의 처방을 만들었다.
나이가 들어 몸이 날 구속하려는 것이니 속지 말자.
피부가 약해진 것이니 가능한 손을 대지 말아야 한다.
간지럽다고 느껴지는 것은 긁으라고 하는 악마의 유혹 같은 것으로
긁는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잠시 시원한 것을 느끼려고 그 유혹에 넘어가면
더 많은 고통만 남겨지게 되니까 절대로 긁어서는 안 된다.
긁지만 않으면 해결이 된다고 하는 것을 잊지 말자.
얼마나 간단한 해결 방법이고 확실한 처방인가
이 처방은 내가 몸으로 겪어서 증명이 된 것이니 믿자.
그러니 절대로 손을 대지 말아야 한다.
이런 처방을 머릿속에 담아 두고도 긁으려고 하면
내가 나를 이기지 못하는구나...
하면서 나를 원망했더니 조금씩 손대는 것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늙어 가면서 생기는 부작용을 조금은 개선할 수 있겠다고
나의 정신력도 제법 쓸모가 있다고 올해는 잘 넘기겠지 하고 기대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