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의 잔치였는데
내 아이가 유치원이라는 곳을 다니게 되어 처음 하는 운동회날
엄마로 아이의 행사에 참가하는 것이 괜히 뿌듯하니 벅찼었다.
이 첫 운동회는 약 30년 전의 기억인데도 생생하게 어제일 같은데
다음 해의 운동회도 그다음의 운동회도 거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다.
아마도 엄마로서 느끼는 첫 아이의 운동회라서 그런 건지
둘째 아이도 운동회라는 것을 했었는데 이상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같은 아파트에 같은 유치원을 다니는 집이 여러 집 있었는데
30년 지기의 일본인 친구도 이때 아이들을 통해서 친해지게 되었다.
이렇게 만난 몇 가족들이 다들 처음으로 맞는 운동회라고 들떠서
뭘 만들어 가야 하는지 뭘 준비해 가야 하는지 서로 정보 교환을 했었다.
나도 나이가 있는 엄마에 속했지만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엄마들도 있어
나이가 아주 젊은 엄마들에게 물어 가면서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요즘은 어떤 식으로 도시락을 싸는지 물어 가면서 준비를 같이 했었다.
난 그 속에서 유일한 외국인이어서 예외가 되는 특권을 누렸는데
그건 일본 요리가 전무하고 일본 생활에도 서툴러서 그랬는지
뭔가 사서 까서 넣어 오면 되는 과일이나 과자 같은 것을 담당했었다.
이렇게 아파트 복도를 뛰어다니면서 동네잔치 같이 야단을 떨었는데
운동회날 아침에는 어느 자상한 남편에게 부탁해서 차로 아이들은 보내고
서둘러서 음료수와 과자 과일 등을 들고 자전거로 둘째를 태워 달렸다.
얼마 만에 보는 풍경인지 만국기가 펄럭이는 것을 보고 웃었다.
자리를 잡아 놓겠다던 젊은 엄마가 정말 엄청 넓은 자리를 펴 놓았는데
거기에는 유치원을 다니지 않는 어린아이들이 모여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때 몰려다녔던 6 가족은 한 가족만 빼고 모두 아이들이 2명이었는데
나이가 비슷해서 둘째들은 이 운동회가 뭔지도 모르면서 그저 신나 했다.
이 둘째들을 보살피는 사이사이 각자의 아이가 나오면 알려 주면서
그럼 둘째는 부탁을 하고 첫째의 사진을 찍으러 달려 나갔었다.
이렇게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점심시간이 되어 첫째들이 오면
첫째들의 활약에 다들 지나치게 과장된 칭찬으로 시끌벅적했었다.
음식 잘하는 엄마들이 싸 온 점심 도시락을 처음 봤던 내 아이는
주변의 일본 아이들보다 두배는 먹어 치우는 식성이었는데
그런 아이가 이걸 어떻게 먹어요 이건 어떻게 만들어요 하면서
들떠서 흥분된 표정에 말투로 준비해 온 엄마들을 싹 녹여 버렸다.
이랬던 운동회가 다음 해에는 아주 엄마들에게 편하도록 달라졌다.
운동회에 대한 통지서가 왔는데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들려 보내라고
도시락과 물통만으로 해 달라고 과자도 넣지 말라고 되어 있었다.
이렇게 되니 자연스럽게 엄마들도 그냥 점심은 집에서 먹자고 하고
그러니 퍼지고 앉을자리도 필요 없다고 다들 서서 구경했는데
점심시간이 되니 정말 아이들은 모두 교사를 따라 들어가 버렸다.
텅 빈 운동장에서 다른 가족들도 하나둘씩 떠나가
나도 둘째를 태워서 터덜거리며 집에 오니 갑자기 너무 썰렁했다.
할머니나 자영업 하는 아버지들도 와서 같이 어울리다가 혼자가 되니
왠지 둘째도 나도 엄청 처량한 신세가 된 것 같았다.
첫째의 도시락을 싸면서 남겨진 것들을 집어 먹으며 점심은 해결하고
다시 유치원으로 향하는데 꼭 가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씁쓸했었다.
이렇게 방침이 바뀐 이유는
운동회날 와 줄 수 있는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위한 배려라고 했다.
맞벌이하는 부모를 둔 아이나 한 부모의 아이들을 위해서
평등하게 상처 받지 않게 하자고 만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