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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mom Jul 22. 2022

아이가 지난 이야기를 한다.

미국 고등학교 영어 수업

딸아이가 미국에 와서 적응하는 것이 힘들었다.

내가 영어를 가르치지 않고 미국에 데려다 놓은 것이 잘못이었는지

이 아이가 일본에서 누려왔던 것을 미국에서는 쉽게 얻지 못하니

주변에 모여드는 일본 아이들과 몰려다니다가 클럽도 만들었다.

그 일본인 클럽에 한국인이 떡하니 회장이라고 해서 기가 찼는데

영어 선생님과 맞지 않아 부딪치더니 아예 공부를 놔 버리려고 했다.


지역구 한국인 교육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설명을 하고

학교의 학업 카운슬러와 상담을 신청해서 한국인 담당자가 통역을 해

아이의 영어 실력을 인정해 주지 않는 이유를 묻고 어떻게 하면 되는지

이러다가는 대학 가는 과목의 수업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복받쳐서 울음이 떠지니 멈출 수가 없었는데

아이를 내가 끌고 와서 이런 사단을 만드는 건지 불안하다고 했다.


가장 아래 수준인 영어 ELD1을 1년 그대로 하고 이제 ELD2인데

이렇게 하면 고등학교 4학년이 되어야 일반 다른 과목을 받게 된다고 

아이의 영어 실력이 정말 ELD2 인지 시험이라도 치게 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바로 조치를 해서 성적으로 ELD3을 건너뛰고 다음 단계로 갔는데

다음 단계 sheltered 영어는 다른 과목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이어서

미국에 간지 1년 반에 과학 수업도 지리 수업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시간 동안 아이는 방황을 했고 공부에서 많이 멀어지고

미국이라는 환경에 부정적인 면만 쳐다보면서 거부하는 편이었는데

일본인 아이들은 딸아이의 당당하게 보이는 체구에 통솔력에 엄청 따랐고

그 일본인 아이들의 부모들도 딸에게 많은 것을 배려하면서 부탁했다.


딸아이가 일본인들보다 영어 발음도 좋아서 그런지 뭐든 잘한다고 하니

그 속에서 지내는 것이 편했던 것인지 3학년까지 이들과 몰려다녔는데

그래서 나는 많이 딸아이에게 잔소리를 하고 그러면서 싸우게 되었다.


사춘기였던 딸은 나와 싸우고 나가면 일본인 친구의 넓은 집에서

환영을 받으며 그 집 아버지의 좋은 차를 타고 가서 회사도 구경 다녔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우리는 왜 이렇게 가난하냐고 불평을 늘어놓았는데

결국엔 물건이 날아다니고 그러다 나는 환영하는 그 집 아이가 되라고 하고

그래서 다시 나간 아이는 그 집에서 극진하게 대접을 받으며 지냈다.

그 집 아버지가 딸아이를 정말 좋아한다고 그 집 엄마가 전했는데

사정도 모르면서 자기 딸이 내 딸과 공부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고 했다며

언제든지 자기 집에 와도 된다고 하는데 정말 한심했다.


미국에 가서 거의 3년은 이런 시간으로 힘들게 보냈었다.

일본이 싫어서 떠나 아는 사람도 없는 미국에 왔는데 이 상황이라는 것이

아무리 일본의 냄새를 버리라고 이야기해도 아이들은 도와주지 않았다.

그렇게 전투를 하듯이 지내면서도 뭔가 조금씩은 달라졌었는지

4년째 되던 해 여름방학에 일본에 갔다 와서는 아이들 태도가 달라졌다.

나처럼 싫어하는 것은 아닌데 그래도 일본 편에 서 있던 아이가

이제는 중립을 지키면서 일본에 대해 달라 보인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준 명품급 손목시계를 면세점에서 사 준 적이 있었다.

그걸 체육복으로 갈아입으면서 라커룸에 넣어 둔 것이 없어지고

예쁜데 하는 아쉬움에 다시 똑같은 것을 사 주었는데 또 사라졌다고 했다.

나는 자기 소지품을 지킬 줄 모른다고 더는 사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아이도 다시 사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아 그대로 조용해진 사건이 있었다.

이렇게 딸아이는 미국의 고등학교에서는 좋은 추억이 없다면서

어쩌다 아들이 고등학교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랬던 딸아이가 지나간 일을 불현듯이 나에게 이야기했다.

일본 아이들에게 그 손목시계를 자랑했었다고 그래서 없어진 것 같다고

다시 사 주었던 것도 자랑을 했다고 하면서 일본 아이들이 가져간 것 같다며

일본 초등학교 때 한국에서 산 지우개나 작은 자등이 하나씩 없어졌다고

내가 수업이 마치면 큰 소리로 없어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했다는데

조금 전까지 아무것도 없던 바닥에 지우개가 있다며 한 아이가 알려 줬다고 했다.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데 딸아이는 초등학교 기억부터 고등학교 기억으로

일본인 아이들이 도둑질을 한 것 같다고 하는 말을 스스로 꺼냈다.

그저 착각일 수도 있는 일본 아이들이 가져간 것 같다는 말에는 관심이 없고

이런 말들을 별 감정 없이 한다는 것에 얼마나 고마운지 안심이 되었다.

딸아이는 고등학교의 이야기를 언제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우울한 이야기라고

말 끝에는 왜 꺼내서 이런 기분을 만드냐는 식이었는데 이번은 달랐다.


딸아이 자신은 고등학교 기억을 지우려고 노력을 한 건지 좋은 기억이 없다는데

한국인 엄마들에게서 전해서 들은 많은 자랑거리도 학교에서 받은 상장도 있다.

영어는 일반 반보다 낮았지만 수학은 대학 1학년 수준의 수업을 들었는데

4개 반이 있는 AP 수학반에서 딸아이가 유일하게 어려운 그 한 문제를 풀었다고 

다른 반에서 수학 선생님이 딸아이의 이름을 이야기했다고 전해 들었다.

그런데 이런 자랑스러운 일도 있었는데 왜 기억에서 싹 지워져 버렸는지 

딸아이의 미국 시간은 고등학교를 지나서부터 기억되어 있었다.


그런 아이가 스스로 말을 꺼냈다. 

딸아이는 내가 지고 있던 짐을 조금 덜어 주었고 스스로도 자유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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