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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mom Aug 01. 2022

열일하는 에어컨

코로나 탓에

부산의 오피스텔은 일 년에 5개월 정도를 지낼 것으로 생각하고

수리해 주는 아저씨가 에어컨이 너무 오래된 것이라고 하기에

에어컨을 고르며 적당하게 내가 앉은자리만 시원하면 된다고 정했다.


부모님의 일로 자주 와야 해서 호텔비를 줄이자는 목적으로

딱 그만큼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이 오피스텔을 장만하고

사무실로 썼다는 오래된 내부를 바꾸며 바닥과 벽지를 고민했는데

싱크대도 세탁기도 에어컨도 엉망이라고 해서 할 수 없이 바꿨다.


그때 내 생각은 그저 많아야 5개월 정도를 지낼 거라며

장만한 의도와 맞게 모든 것을 적당한 가격의 것으로 정했다.

그리고 정말 2년간은 5개월 정도만 봄과 가을에 와서 지내니

에어컨 쓸 일이 너무 없어 괜히 달아놨나 할 정도였는데

이 코로나가 발목을 잡고서는 쭉 2년 이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난 체온을 재면 낮은 편인데 몸에 열이 많아 더위를 많이 탄다.

이런 나에게는 에어컨이 정말 필수품이어서 일본에 집을 장만할 때

거금을 들여서 엄청 성능이 좋은 에어컨을 방마다 하나씩 달아 두었다.

그 일본집은 2년 이상 비워둔 상태여서 습기와 벌레로 볼만할 텐데

그런 성능 좋은 에어컨은 놔두고 연약한 이 에어컨을 혹사시키고 있다.


벽지를 바르면서 에어컨을 위한 커다란 구멍을 남겨 뒀는데

에어컨을 달고 나니 밑으로 조금 구멍이 남아 그걸 막아 달라고 했다.

그렇게 붙여진 벽지는 같은 벽지인데도 흔적이 남아 신경 쓰인다고 하니

아저씨 말이 자꾸 쳐다보지 말라고 안 보면 신경이 덜 쓰인다고 하기에

명언이라며 한참을 큰 소리로 웃었던 추억도 가진 에어컨이...


에어컨에서 물이 떨어진다. 

밖이 너무 더워서 그런가 했더니 진짜 더운 날에는 떨어지지 않았다.

비가 와서 습기가 많아 그런가 하니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전화 상담을 해 보니 고장은 아니라고 하고 실제로 고장은 아닌 것 같다.


한 여름에는 꼭 미국에 가서 지냈었다.

그래서 코로나로 처음 부산에서 한여름을 지내며 매미소리를 들었을 때

아이들에게 매미소리를 듣는다고 자랑을 하면서 여름을 지냈는데

그때 에어컨에서 물이 떨어져 얼마나 놀랬는지 엄청 호들갑을 떨었다.

이것도 한번 경험을 해서 그런지 지금은 덤덤하게 떨어지는 물을 받으며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에 고마워하면서 지내는데 안쓰럽기는 하다.












물이 막 쉴 새 없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에어컨의 기분에 땨라 그런지 일정하지가 않다.

물방울이 튀지 말라고 나름 머리를 써서 받쳐둔 종이로 된 포장용기는

어쩌다 떨어지는 물방울을 빨리 흡수하는데 보기에는 쫌 그렇다. 


물이 떨어진다.

조용한 새벽에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는 엄청 크다.

처음엔 많이 신경이 쓰이더니 이젠 그 소리도 청아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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