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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mom Jul 29. 2022

내가 내 운을 써도 될까...

중년 엄마의 입장

아이들의 도전이 끝나면 나도 내 운을 한번 써 보자고 마음먹었다.

아이들의 도전이라는 것은 대학에 입학원서를 보내면서 시작했는데

그땐 이번으로 잘하면 마지막이 될 거라고 여러 가지를 상상했었다.

편입을 하겠다고 하는 말에 놀래고 도전한다는 자세에 응원을 하면서

편입이라는 것은 안되어도 지금의 대학에는 다닐 수 있는 것이니까

마음 편히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 되겠지 하면서 안전한 도전을 즐겼다.


그 편입이 원하는 곳에 성공을 하고 나니 이번엔 대학원에 가겠다고 했다.

이러는 동안 난 계속 아이들의 뒤에서 나를 전부 버리고 서서 버텼는데

덕분이었는지 소박한 도전이어서 그랬는지 아이들은 원하는 방향으로 걸었다.

매번 대학까지만 보내면 나는 경제적으로 더는 도와줄 힘이 없다고 했던 만큼

이 이상의 도전에 대해서는 나의 소관이 아니라고 선을 넘지 않으려 했었다.


운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그것은 어떻게 준비해서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운의 크기가 달라진다고 들었다.

그러니 나에게도 어떤 운을 가지고 있을 텐데 그 운을 쓴 것 같지가 않아서

나도 준비하고 도전하면 그 운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때를 기다렸다.


그런데 왜 이런 것을 아이들이 있기 전에는 몰랐는지...

아마도 주변이 나에게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서 그럴 거라고

그 주변을 극복하는데 아이들이 힘이 되어 나를 바로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사이 나의 아이들이 커서 도전을 시작하니 그것이 나의 바람이 되었다.

그래서 내가 가진 내 운은 아이들 것이 된 듯 내가 선뜻 쓰지 못하는데

아이들이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엄마인 나는 그냥 내 운을 쓸 수가 없다.


아이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국가고시 같은 SAT 시험을 보러 갔었을 때 

나는 시험장 밖에서 서성이면서 내 기운까지 보태야 한다고 떠나질 못했다.

생각보다 점수가 좋지 않다고 다시 치고 또다시 칠 때도 기운을 전했는데

별로 달라지는 것 없이 항상 비슷한 점수여서 이게 아이의 실력이구나 했다.

그러니까 기운을 더 보텐 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는데

그러면서도 내 기운을 내가 쓰는 것은 엄마라면 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왠지 내가 어떤 일에 도전을 하거나 복권을 사거나 해서 잘되면

내 운뿐만 아니라 집안의 좋은 기운까지 모두 쓰게 될까 봐 겁이 난다.

적어도 엄마이니까 그래야 할 것 같아 가능한 조용하게 지낸다.

절에 가거나 성당에 가서 잘 봐달라고 비는 일까지는 못하지만

내 운을 아이들에게 주는 것은 내 것을 주는 거니까 상관없을 거라고

나는 내 기운을 쓰지 않고 잘 가지고 있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운이라는 것이 정말 있기는 하는 건지 모르지만

아이가 운이 필요하다는데 내가 내 운을 내가 막 쓰기는 어렵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어떤 것도 도전하지 않고 있는 안일한 나에게

이 생각은 좋은 구실도 되어 주고 있다는 것을 나도 알고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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