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라에서 쭉 3년을 살았더니
지금의 나는 예전의 시련은 내 것이 아닌 듯이 지낸다.
고베의 이 집에서 날이 저물어 가면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었다.
오션뷰라는 멀리 보이는 바다가 한없이 망막해 보이는 게
내 주변에 있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나만 남아 있었다.
어떤 일도 어떤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허전하니 서글퍼서
이게 고독하다는 것인지 하면서 이러다가 우울증이 온다고 하니
빨리 이 상태를 벗어나야 한다고 재미있는 오락프로를 찾거나
아이들의 사진을 보면서 혼자 중얼거리면서 나를 불러 세웠다.
이렇게 혼자서 나를 지키려고 많은 애를 썼던 내가
3년간 내 나라 말로 내 나라의 사람들과 얽키면서 살았더니
어떤 든든한 뒷배가 생겼는지 나도 모르게 내가 탄탄해졌는지
이제는 웬만한 일본의 일에 배알이 꼴린다는 기분은 덜 들 것 같았다.
왠지 이제는 도전도 해 볼 수 있겠구나 하는 기분도 들면서
뭔가를 먹으려면 생산지가 어딘지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이곳이 이런 곳이니까 하면서 만사에 다 느긋하게 받아들이는데
크게 마음을 먹지 않아도 되는 이 상태가 정말 신기하다.
아마도 내 나라에 내가 지낼 수 있는 거처가 있다는 것에서
그 거처에서 지낸 경험이 나를 푸근하게 안정시키고 있었던 것 같다.
기다리는 좋은 부모가 있었다면 언제나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정감에
새로운 모험에도 도전이 가능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래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거구나 하는 것도 느껴졌다.
나는 60이 넘어서 이런 경험을 한다.
이 고베 집이 여기저기 다 3년의 공백으로 상처가 났지만
집안 전체가 새집처럼 고쳐진 집을 사서 좋아했던 그때보다
지금이 더 새롭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그땐 그저 이 집이 새집 같아서 좋구나 하면서 입으로 내뱉어
그 말을 내 귀에 전달해야 내 기분이 새롭게 느껴졌는데
이젠 구태어 떠들지 않아도 느껴지는 이 기분은 처음인 것 같다.
이 집이 정말 사람 사는 집같이 보이는 것이다.
이 집이 아이들과 지냈던 물건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고
이 집은 내가 갈 곳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머물어야 했던 장소가 아닌
아이들의 움직임이 느껴지고 아이들의 얼굴이 보이는 그런 집으로
그 중간의 긴 공백 없이 바로 내가 이어서 살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이곳에서 지낼 수 있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작은 기회인지
애써서 마음을 바꾸려고 글을 쓰면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이제는 이 집의 방문 손잡이를 잡으면서도 저절로 좋은 기분을 느낀다.
갑자기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이번 코로나로 나는 부산 오피스텔에서 3년을 움직이지 않고 살았다.
이것은 미국에서 아이들과 계속 한 곳에서 10년을 살고는 처음으로
조여오던 주변이 사라지고 없는 내 나라에서 꿈만 같은 시간을 지냈었다.
그래서인지 그 3년은 나에게 있던 많은 긴장에 대한 두려움들이
사라진 듯 무덤덤해져 나도 모르게 치유가 된 것인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남의 나라에서 아이들도 보호해야 했고 경제에도 신경을 써야 해서
그 가시를 세우면서 만든 긴장은 한 번도 버리려고 하지 않았는데
나 자신도 아이들에 대한 것도 이 긴장을 버리면 다 무너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엄청 많은 가시를 세우고 살았는데 부산 살이 3년에
무엇 때문인지 왜 그런 건지 지금은 그 가시들이 사라졌다.
그 사이에 아이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나는 푸근하게 내 나라에서 지내
이런 마음이 찾아왔구나 하니 이 나이가 되어서 얻게 되는 것에
조금은 원망을 하다가 이제라도 가지게 된 것은 운이 좋은 거라고
얼떨결에 얻은 이 안정감을 즐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