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일이 확 줄어든 도장
코로나로 올림픽으로 일본의 속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해서 다들 놀랬던
도장과 종이를 중요시하는 일본 모습이 이제는 달라지려는 것 같았다.
일본이 얼마나 종이를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계속 일본에 살았던 시절에는 몰랐는데
코로나로 조용히 지내는 동안 나왔던 뉴스로 아~ 그랬었지 하면서 알게 되었다.
도장이라는 것도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동안 열심히 찍었던 도장이었는데
그래서 더 자랑스러웠던 내 도장이 활약할 일이 없어진 것에 섭섭해졌다.
소포가 와도 도장을 찍어야 해서 성만 쓰여있는 도장을 현관에 두고 살았었다.
내가 나라는 증명을 하려면 성과 이름이 다 들어 있는 것을 찍어야 하는데
인감도장을 들고 다닐 수 없어서 막 쓸 수 있는 도장도 따로 장만을 해야 했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한 사람이 3개의 도장은 필수적으로 쓰게 되어 있어
일본에서는 도장부터 도장주머니나 인주 등 부품도 꽤나 다양했다.
한국에서는 도장을 들고 다녀야 할 기회가 별로 없지만
일본에서 지내려면 반드시 도장이 있어야 해서 이번에도 열심히 챙겨 왔는데
이번에 와서 살려 놓은 외국인 등록증에는 한자의 이름이 사라져 없었다.
그래서 구청에도 한자이름이 아닌 영문 이름으로 전입 신고가 되었고
구청에서도 재입국 관리소에서도 섭섭하게 도장이 아니어도 된다고 하더니
은행에서도 나에게 한자 이름을 묻지도 않으면서 사인으로 된다고 했다.
나에게는 엄청 멋진 내 맘에 쏙 드는 도장이 있는데...
일본에서 태어나 살아온 시모는 한국에서 온 며느리를 엄청 걱정했었는데
내가 내 성을 쓰겠다고 하는 것에도 한국 발음 그대로 쓰겠다는 것에도
일본을 두려워했던 시모(남편의 어머니)는 조용하게 나와 싸웠다.
내가 한국에 가 있는 동안 들려서 내 성도 발음도 일본식으로 바꿔놨는데
일본에서는 남편의 성을 따라 바꾼다면서 내 성도 구청에 가서 바꿔놓고
한자 이름의 읽는 방식이 일본에는 공식적으로 정해진 것이 없는지
꼭 한자 이름에는 읽히는 발음을 쓰도록 하는데 그것도 일본식으로 바꿨다.
남자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정말 큰 고함소리 한번 없이 시모가 바꾸면
내가 일본에 돌아와 그걸 다시 되돌려 놓는 그런 힘 겨루기를 계속했었다.
그분의 시대에서는 두려운 사태가 생기곤 했으니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이해는 했지만 나는 나니까 내 이름 그대로 불려져야 한다고 고집을 했다.
이랬던 시모는 남자아이가 태어나니 어릴 적에 도장을 만들어 주면 잘 큰다고
딸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아무 말도 없다가 어느 날 도장의 중요성을 꺼내시더니
딸아이 것도 내 성이 제대로 되어 있는 내 도장까지 만들어 오셨다.
엄청 유명한 집인데 하루에 10개 정도만 받아 새벽에 가서 줄을 서야 했다고
도장을 파기 전에 생년월일까지 물어서 사주에도 도움이 되도록 파 준다며
도장을 들고 오셔서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한 것도 아닌데 도장값을 청구했다.
30년 전에 도장 하나에 5만 엔이 넘어 그걸 지불하고 몇 달은 고생을 했는데
남자아이에게는 부적 같은 것으로 일찍 만들어 주면 좋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런 도장의 글씨가 정말 마음에 쏙 들었다.
도장값이 이것이었구나 하는 납득이 되는 그런 글씨체가 예술품 같은데
가는 선으로 되어 있는 테두리 안에 가는 선의 이름이 꽉 차게 들어가 있어
선은 가늘어도 도장을 찍어 놓으면 가득 차 보이는 게 단단해 보였다.
글씨체가 부드럽게 자유롭게 쓰여 있어 보면 볼수록 소중해져
당연하게 인감도장이 되었고 한국에 가서도 이 도장으로 썼는데
간혹 은행에서 도장의 글씨가 멋지다고 하는 말도 들었었다.
이런 도장을 아이들도 하나씩 가지고 있는데...
아이들도 어릴 적 세뱃돈을 넣어 두자고 만든 통장에 이 도장을 찍었다.
그러고 나서는 도장을 쓸 일없는 미국에 갔으니...
아이들의 도장을 보면 정말 아쉽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름을 이렇게 멋지게 작품으로 만들어 줬는데 쓸 기회가 없다는 것에서
거기다 거금을 주고 만들었는데 가치를 못한 다는 것이 아까웠다.
그렇다고 도장을 써 보자고 일본에서 사는 건 아니라고 웃었지만
외국인이어서 영어 이름으로 대신하고 사인만으로도 되는 것인지
이제는 이 일본에서도 도장의 역할이 확 줄어가고 있었다.
정말 시대가 변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