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방세에 기가 질려서

이 시간의 마음 정리

by seungmom

마음도 몸도 충격을 조금은 흡수하면 움직이자고 하루를 호텔방에서 늘어졌다.

그리고 다음날 새 기분으로 미리 정해 놓은 방을 보러 아들과 같이 나섰다.

아들도 뉴욕을 잘 알지 못해서 지하철을 타러 가면서도 계속 휴대폰을 봤는데

내가 상상하는 지하철이라는 계념이 이곳은 전혀 아닌 것 같았다.


뉴욕에 와 어둠 속에서 들어간 호텔과 그 주변은 영화에 나오던 그런 거리였는데

지하철이라는 곳도 딱 그런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저 놀람의 연속으로 말이 안 나왔다.

이래서 한국의 지하철이 깨끗하고 안전하다며 좋다고 했구나 하는 납득이 되었지만

뉴욕의 지하철은 왜 어두운지 더러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하철을 갈아타려고 조금 걸어서 급행처럼 간다는 지하철을 탔는데 두 번째가 되니

지하철 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만들어진 것이 100년도 넘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현시대에 만들면 이곳의 지하철도 한국 것 같이 밝은 분위기가 되었을 거라고

반대로 한국의 지하철도 100년이 넘으면 이런 분위기가 되는 건가 하니 아닐 것 같았다.


대학은 W 8th St에 있는데 얻어 놓은 방은 W 124th St에 있었다.

나는 그저 사진으로 아들이 결정하는 것을 지켜봤는데 사진으로는 주변도 달랐고

방은 더욱더 사진과 달라서 사진을 믿지 말라는 말이 이런 것이었나 했다.

아들이 대학원에서 받는 월급에서 식비를 빼고 지하철로 한 번에 갈 수 있는 곳으로는

Central Harlem 이곳뿐이라고 하는데 그 우범지역에서 살아야 하는 것을 피하려고

양옆에 있는 뉴저지 New Jersey나 브루클린 Brooklyn 도 찾아보기는 했지만

가격이 싸면서 깨끗하게 고쳐 놓은 집은 한 시간 이상 멀리 있었다.

강을 건너지 않아도 되고 가구도 있고 공용 부분은 청소도 해 준다는 것에서 정했는데

집을 나오면 거리가 험난해서 딸아이도 다니기가 힘들겠다고 했다.


유럽의 어떤 단체가 운영하는 방이라고 하는데 건물을 사서 수리를 한 것이

온통 합판으로 바닥도 깔고 계단도 만들어 새로 한 것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건지

걸을 때마다 모든 것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고 페이트를 칠하면서 튄 것들이 있었다.

방은 정말 작았는데 식당과 응접실이 있는 공간은 아기자기한 분위기로 되어 있고

옥상에도 벤치가 있고 지하에는 영화도 볼 수 있는 공간에 운동하는 공간도 있었다.












요즘 아이들의 취향에 맞는 것인지 아들은 기분 좋게 자기 공간이라는 표시를 했는데

찬장도 구분되어 있고 냉장고에도 사용하고 싶은 공간에 이름을 적어 두게 해 놔

딸아이는 이런 것들에 엄청 높은 점수를 주면서 좋다는 말을 연발했었다.

딸아이 덕분에 내가 내려버린 아들의 기분을 올려 주었는데 아들은 만족을 한다면서

월 1700달러로 이런 방은 어렵다고 잘 찾아내어 미리 계약한 것이 잘한 일이었다고 했다.


아들이 박사 공부를 하게 된다면 이제까지 누나와 같이 살면서 응접실 한편을 쓴 아들에게

아들 자신만의 멋진 공간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살았었다.

아이는 학교에서 받는 월급으로 해결을 하려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하는데

이 시점에서 난 왜 조금이라도 보태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나 하는 후회를 했다.


비자를 받고 정말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살 곳을 찾기 시작했었다.

거의 두 달을 찾았는데 정말 방 월세가 너무 비싸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처음엔 방 하나를 빌려 쓰는 것이 최선이라는 사실에 적응하는데 오래 걸리고

다음엔 방 하나의 크기에 놀래서 또 받아들이는데 시간을 보냈다.

학교에서 빌려 준다는 기숙사는 자리가 안 나는지 소식도 없고 떠나야 하는 날짜가 다가와

뉴욕에 가서 방을 보면서 결정하자고 했는데 이 작은 방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결정이 나고

아들은 방세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는 이 방이 가장 좋다고 계약금을 보냈다.


결과적으로는 뉴욕에서 이 방 저 방 보러 다닐 처지가 아니어서 잘 결정한 일이 되었지만

이런 곳이 1700달러나 한다고 하니 왜 사람들은 뉴욕에서 살고 싶어 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집들이 모두 너무너무 오래되어서 수리를 해도 이 정도인 건지... 하면서 거리를 보면

관광을 하러 오는 사람의 눈에는 이런 건물들이 볼거리로 좋아 보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이 거리에 이 집들을 그대로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 사람들을 느끼려고 하니

부산의 오피스텔에서 나와 갑자기 이런 낡은 도시에 온 내가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세가 비싼 것도 길거리가 지저분한 것도 마리화나의 냄새가 진동하는 것도 다 뉴욕인데

난 내가 원하는 것만을 찾으려고 기를 쓴 것이 다 거부하는 꼴이 된 것이라며 생각을 바꿨다.


아들은 이게 새로운 시작이라고 기분 좋게 현관의 우편물 함에도 이름을 썼다.

이 건물 밖으로 나가면 그대로 Central Harlem으로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데

그래도 Whole Foods가 조금만 걸으면 있어서 그나마 안전하겠지 하며 위로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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