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와서 앓아누웠다.

인정하는 고통

by seungmom

뉴욕의 호텔에 8일 10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부산에서 떠난 시간이 8일 오후 4시 반 비행기였는데 아직 8일이었다.

인천에서 갈아탄 긴 비행거리에 지치고 그동안 준비를 하느라 긴장을 해서 그런지

아무런 감정도 없이 자다가 깨어 먹고는 다시 자는 반복으로 뉴욕 공항에 왔다.


꼬박 하루를 빈둥거리면서 호텔에서 인천 공항에서 사 온 것으로 연명을 하면서 지냈는데

10일이 되니 정신이 드는지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뭘 해야 하는지 생각하려고 애를 썼다.

피곤이 너무 겹치면 사람은 생각을 멈추는지 딱 숨이 붙어 있을 만큼만 머리가 움직였는데

한국 편의점에서 사 온 하루이상 지나간 삼각밥과 새우버거를 꾸역꾸역 먹으면서 보냈더니

살만해졌는지 아들이 이제부터 지내야 하는 방을 보러 가기로 했다.












아들이 받게 되는 월급에서 가능한 해결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방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오만가지 생각으로 뒤죽박죽이 되어 서럽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래도 당장 그 방에서 지내야 하는 아들에게 내가 뭐라고 떠들 수는 없어서 입은 다물었지만

내 표정으로 내가 뭘 생각하는지 느낀 아들은 나에게 위로라고 하는데 그게 더 안쓰러웠다.


방을 보고 아들은 마음에 든다면서 깨끗하게 고쳐놓은 것이 좋다고 하는데

난 조금도 그게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으니 더 마음이 부글거렸다.

한 달에 얼마라도 보탠다면 이 상태는 면하지 않을까 하면서도 능력 안에서 살아야 한다고

의존하지 않아야 본인도 떳떳해진다고 호텔방으로 돌아오는 내내 용을 쓰면서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아들과 나는 서로의 눈치를 살폈는데 그날 저녁 아들이 열을 냈다.

꽤 높은 열을 이틀이나 내더니 겨우 내려갔는데 하루는 더 쉬자고 호텔방에서 뒹굴다가

LA에서 딸이 오기 전에 짊어지고 온 가방을 그 작은 방에 가져다 두자고 움직였다.


방을 보고 오면서는 어떻게 하면 저 방을 벗어날 수 있을까만 궁리를 했는데

그 번뇌가 가라앉은 건지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을 인정했는지 우선 1년은 살게 두자고

내 마음보다는 아들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여행 가방 4개에 반팔 옷과 신발에 이불과 겨울 패딩까지 쓰던걸 모두 가져왔는데

이걸 좁은 계단으로 5층까지 끌고 올라가려니 아들이 힘들어 보여 나도 기를 쓰고 거들었다.

아들은 어제까지 아팠던 몸이라는 생각에 나는 무리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돕자고 했는데

간단하게 물건을 꺼내어 펼쳐두고 가방 두 개를 비워서 호텔로 돌아와서는 내가 누워버렸다.


무슨 조화인지 방을 보러 갔다 와서 아들이 눕고 물건을 가져다 두고 와서 내가 누웠는데

나는 열이 나고 이틀째 가래가 끓어서 뱉어 내자고 크게 기침을 하다가 허리가 휘청하고는

뉴욕에서 지내는 내내 허리가 아파서 진통제를 먹으면서 지내야 했다.


몇 년 전에 여행 가방을 번쩍 들다가 허리가 아파서 그다음부터는 조심을 했었는데

기침을 하다가 허리를 다칠 수 있다는 것에는 들어 본 적이 없어서 더 한심했다.

계속 푹 쉬어야 할 것 같은데 딸이 와서는 구경도 하고 먹으러는 가자고 해 걸어 다니고

조금 편해지면 아들 방에 필요한 것을 사거나 정돈해 주려고 움직였더니 좋아지지 않았다.


아마도 방을 보고는 마음의 충격을 받아서 둘 다 앓아눕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데

그 고통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것인지 첫날 받은 충격에 비해서는

떠나기 전에 가 본 방의 모습은 살만한 곳이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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