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많이 고마웠습니다.
22년 여름에 아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이렇게 있기는 젊은 날이 너무 아깝다고
재외국민의 자격을 버리고 군에 갔다 오자고 하니 아들도 그러자고 했는데
아들이 원하는 길을 접어야 한다는 것에서 아들이 많이 불쌍해 보였다.
아들을 미국으로 데리고 가기 전부터 출생지인 부산의 병무청에 자주 연락을 했는데
국적이 대한민국이니까 병역의 의무는 지켜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
정말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전화를 했더니 몇 년생 누구의 엄마라고 하면 아~~ 하면서
아들의 이름을 친근하게 불러 줄 정도로 국제 전화를 자주 했었다.
미국에서 사는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전부 달라서 들어도 이해가 안 되고
몇 년에 한 번씩은 병역법도 바뀌는지 18세까지 신고하는 것을 지키려고 애를 썼는데
잊지 않고 하니까 또 바뀌었다고 해서 그다음엔 정말 겁이 나서 더 열심히 전화를 했다.
내가 실수해서 병역 기피자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여기저기에 써 두고 지켰는데
대학에 들어가서 병역 연기 신청을 하려고 수속을 밟았더니 재외국민 2세라고
LA 영사관에서 도장 찍힌 여권을 받아 이게 뭔지 몰라 다시 국제전화로 물어봤다.
부산 병무청에 아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여자분이 재외국민 2세가 뭔지를 설명하면서
아들은 부모가 영주권자여서 이런 자격을 받은 것이 아니고 순전히 본인 자격이라고
한국에 있지 않으면 37세까지 병역의 의무가 없다고 했었다.
어떻게 이런 자격이 되는 건지 물었더니 아들 본인이 대한민국에서 받는 권리가 없다고
그래서 의무도 없는 거라는 이해하기 쉬운 이 말에 주변에서 들었던 말들이 납득이 되었다.
그렇게 아들은 자신이 가진 자격으로 공부를 마치고 15년 만에 한국으로 들어와서는
다시 부산 병무청에 전화를 해서 얼마나 있을 수 있는지 물어봤더니
아직 37세가 아니어서 3년간만 머물 수 있는데 월급을 받는 일은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친구들이 이참에 아들에게 바깥세상을 알게 하라고 아르바이트라도 시키라고 했는데
한국말도 서툴고 일을 하다가 걸리면 법을 어기는 것이 되어서 그냥 조용히 살았다.
부산 병무청의 여자 직원분의 목소리가 미국에서 전화할 때의 그 목소리가 아니었는데
아들이 언제까지는 꼭 한국을 떠나야 하는지 날짜까지 모두 계산을 해서 알려 주어서
얼마나 든든하고 고마운지 뇌물이라고 할까 봐 다 같이 나눠 쓰시라고 핸드크림을 보냈더니
받으면 안 된다고 상자 그대로 소포가 돌아와 괜한 짓을 해서 수고스럽게 만들기도 했었다.
석사를 마치고 바로 연구실에서 일을 하자고 했는데 그 도시가 싫다고 거절을 하면서
긴 시간이 흘러가고는 아들도 나도 점점 눈높이를 내리고 욕심을 버리면서
한국에서 살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도 나오고 그러려면 우선 군데를 다녀와야 한다고
아들은 군데 가면 살이 빠질까 하면서 나는 아주 사람이 되어 온다고 하더라며
부산 병무청에 전화를 해서 재외국민 2세가 군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병무청 직원은 조심스럽게 걱정을 하면서 순서를 알려주고 신체검사 날짜를 잡았는데
아들이 생일을 보내고 신체검사를 받으러 가고 싶다고 해서 가을로 정해 두었다.
정말 막다른 골목에 서서 내린 결정이었다.
대학의 교수가 오라고 해도 학교 측에서 미국 밖에 있는 유학생은 안된다고 하고
인터뷰에서 꼭 같이 일을 하자고 해도 회사가 취업 비자를 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일본은 아들이 가겠다고 해도 내가 말렸을 텐데 한 번은 영국에서 연락이 왔는데
그때 한참 코로나가 영국에 심해서 그런 곳에는 가지 말라고 내가 막았었다.
정말 그동안 여러 일들이 많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운명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신체검사 날짜까지 받아 놓으니 풀리는 것이었는지
NYU 교수가 적극적으로 아들을 붙잡고 어디도 취직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는데
그 막연한 말에 아들은 신체검사를 취소하고 12월에 낼 원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마음을 정했는데 또 이렇게 막연한 일에 흔들리면서 시간을 보내는 건가 걱정을 하며
다시 부산 병무청에 전화를 해서 3년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언제까지 인지 물었다.
원서를 내고 합격통지서를 받고 비자를 받아야 미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데
있을 수 있는 3년이 모자라서 할 수 없이 그 사이에 일본에 가서 지내기로 했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합격 통지서가 나와서 안심을 하고 3년을 비워뒀던 집에 갔는데
아들은 무비자로 일본에 들어간 것이 되니 90일 이전에 나와야 했었다.
미국으로 떠나는 날짜를 알려 달라고 부산 병무청에서 전화가 왔는데
매번 아들이 날짜를 어길까 봐 신경을 써 주는 직원분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군데 가겠다고 요란을 떨고는 그걸 취소하겠다고 다시 소란스럽게 했는데
태풍이 막 올라오는 중이어서 비행기가 뜰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하니
그렇게 되면 다시 알려 달라고 했었다.
그동안 정말 많이 많이 고마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