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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mom Sep 03. 2023

아들이 원서를 내면서 얻은 것은

7년의 기다림에서

아이 혼자서 하겠다고 꾸역 꾸역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것이다.

석사를 마치고 7번의 원서를 내고 갈 건지 말건지 고민하면서

인생은 어떻게 결정이 되는지 그래서 어떤 길을 걷는 건지 느낄 수 있었다.


거절하는 이유가 단순해서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경우도 있었고

아들과 나의 기분에 따라서 학교나 직장이나 그 도시나 나라를 판단하며

조금은 우쭐해서 건방을 떨다가도 원서를 낼 때엔 겸손해지면서

지나간 기회에 대해서 후회를 했다가 잘한 판단이라고 서로 위로를 했다.


아마도 아들은 7년의 갈등과 고뇌에 스스로 한 결정을 받아들이는 일에서

엄청나게 두꺼운 굳은살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아들의 힘이 될 것 같다.


막 석사를 마친 UPenn에서 일을 하라고 연락이 왔을 때 아들이 거절을 해서

이유를 물으니 그 도시에서 다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싫다고 했다.

나중에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을까 하니 그땐 달라져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자신은 많이 생각했고 자신이 내린 결정이니 인정할 거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결정을 내리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살아가면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에 대한 연습은 충분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러니까 7년이 그대로 쓸모없지도 않았다고 엄마인 나는 생각하는데

아들도 언젠가는 이 시간들이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알게 될 거라고 믿는다.


아들의 학벌은 내 아이답지 않게 제법 화려하다.

이런 아이가 내 아이라는 것이 아직도 얼떨떨한데

꼭 대학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던 나에게서 키워진 아이들이

편입도 하고 대학원까지 가게 된 것은 모두 아이들의 힘이었다.


아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속이 탄탄하다는 것을 같이 살면서 알았다.

자신에게 흥미 없는 일에는 정말 걱정이 되도록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

원하는 것은 인터넷으로 찾아 전공이 아닌 분야까지 공부를 하는데

아이가 가지고 있는 정신력이 머리보다 좋다는 것에서 안심이 되었다.


이래서 할 놈은 하고 갈 놈은 간다는 말이 있는지

공부를 더 할 것 같은 아이는 대학의 연구실에서 살길을 찾고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아이는 대학원 문턱까지 넘었다는 것에서

이래서 운명대로 산다는 말을 하는 거구나 한다.


생각이 엉뚱해서 연구실 체질인지 가장 오래 살았던 미국에 간다며

자꾸 대학의 연구실만 기웃거리더니 정말 원하는 곳으로 가는데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아들을 보게 된다면 나는 날아다닐 거라고

이런 날이 오면 난 얼마나 홀가분해질까 하는 상상을 무수히 했었다.


이날이 오면 나는 새털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신나게 살아야지 했는데

합격통지서를 받고 이것저것 진행이 되면서도 비자를 받아야 확실하다고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하나씩 해 나가다 막상 비자까지 받고 나니

뉴욕이라는 걱정이 정말 대학원생이 되었다는 기쁨보다 먼저 찾아왔다.


학교에 가게 된다면 아들 걱정은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뉴욕에서 무사히 잘 지내기만을 바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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