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산불에서 중요했던 바람 방향

자연의 힘을 느꼈다.

by seungmom

태어나서 산불 때문에 이렇게 가슴 조려 본 것은 처음이다.

8일 딸아이가 보여준 창밖의 붉은 불빛을 보고도 차분했었는데

11일 피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서부터

14일 저녁까지 가졌던 불안은 너무 길고 무거웠다.


아이가 피난을 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꺼내고부터는

나는 거의 산불에 관한 뉴스를 찾아 상황을 알려고 애를 썼다.

영어에 짜증이 많은 내가 미국 신문사 웹버전에 들어가서

어디가 어떻게 번지고 있는지 바람은 어떤지 확인을 하는데

가장 보기 쉽게 쓰여있는 뉴욕 타임스의 업데이트가 빨랐다.


이렇게 신문을 뒤지다가 휴대폰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하는

WATCH DUTY를 설치하고 한쪽으로는 바람 방향을 봤는데

이러면서 진화율 11%에서 14%가 되고는 안심을 했다.

진화율이 확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불은 줄어들고 있다는 거니

적어도 405 프리웨이는 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어지럼이 사라지지 않고 있어서 포켓몬도 못 잡았는데

누워 지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람꼴 같지도 않아서

멀쩡하게 잘 쓰던 유리컵도 냉장고에서 꺼내다가 떨어뜨리고

싱크대에 있던 유리컵을 선반에 있던 접시가 떨어져 깨 먹었다.


유리 파편을 정말 오랜만에 찾아 헤매고는 힘들어 늘어지고

멍한 정신에 잘 처리를 했는지 불안해서 바닥만 쳐다봤는데

자려고 누우면서 침대 위에 번쩍이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랬는지

바닥으로 떨어진 유리컵 파편이 침대 위까지 올라갔다는 것에

바닥만 치웠던 일을 침대에 이불까지 모두 털고 다시 닦았다.


아마도 바람이 다시 분다고 하고 불이 지나간 사진을 보고는

멍한 정신이 더 혼란스러워 행동을 잡아주지 못한 것 같은데

더 나이가 들면 이렇게 되겠구나 하는 씁쓸한 미래가 보였다.


11%에서 14%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래서 불이 넘어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각오를 하자고

집안에 무엇이 있는지 기억이라도 해 두자고 둘러보는데

아들이 초등학교 다니면서 만든 어설픈 작품도 벽에 걸려있고

아이들의 무거운 졸업 앨범도 생각이나 도리어 미련만 남았다.


어느 것 하나 값이 나가는 것은 별로 없는데

추억으로 치면 어마어마한 값이 나가는 물건이 너무 많아서

그걸 다 놔두고 백팩하나만 들고나간다는 것은 고문이었다.

생각을 깊게 하기 전에는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했는데

이젠 벽에 걸린 것까지 의미가 있어 나를 무겁게 하고 있었다.


집을 잃은 사람들의 심정은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는 있을지

난 정말 조금도 알지 못하고 있는데도 그런데도 살이 떨렸다.




















그래서 바람의 방향이 중요하게 되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이가 빠져나가는 일에 집중했는데

이제는 집이 타지 않아야 한다는 것으로 바람 방향을 보면서

불이 405를 넘어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휴대폰과 살았다.




















14일 자기 전에 17%가 되었다는 것을 보고는 감사하다고

이 바람에도 진화율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에서 안심이 되어

며칠 만에 긴 잠도 자고 그랬더니 어지럼도 많이 좋아졌다.


불안해서 이틀간 잠도 잘 안 와서 차라리 멀리 떠날까 했다는

딸아이는 교수님이 벌써 연구실에 나오라고 한다며 불평을 해서

최악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젠 일상으로 돌아가도 될 것 같았다.


아직은 꾸려 놓은 백팩을 풀어도 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불안해서 집을 떠날까 했던 마음은 없어졌다고 한다.




추가

17일 아침에 딸에게서 메세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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