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한마디에 움직였다.
나는 이 부산에서 예의를 차리며 잘 보여야 할 사람이 없다.
그저 기제사에 갈 때 조금 챙겨 입는 정도의 노력을 하는데
평소에는 그저 혐오감만 안 주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
옷도 들고 다니는 것도 거의 10년 전에 장만한 것들이다.
그래서 항상 나갈 때의 준비는 속전속결이다.
뭘 입을지를 걱정하는 것은 더우면 쉽게 벗을 수 있는 것으로
앞이 터진 얇은 것을 겹으로 입어서 해결하며 살아왔다.
이렇게 옷으로 멋을 내는 일은 죽는 날까지 없을 것 같고
머리는 염색도 안 하고 있으니 허옇게 변해 있는데
이런 내가 정말 나인 것이니까 하면서 만족하고 있다.
난 정말 건강한 것인지 머리카락이 잘 자란다.
작년 6월에 파마를 하고 미국의 딸 집에 다녀왔는데
그 머리를 다듬어서 10월 말 커다란 행사에 참석하고
그대로 자라난 머리로 일본을 두 번이나 갔다 왔다.
나이 탓인지 긴 시간 동안 어지럼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그래도 머리카락은 자라나 대부분 생머리가 되었다.
거의 집안에서만 지내서 그냥 머리도 묶고 살았는데
나가야 하는 일이 생기면 묶어서 도리어 깔끔하다고
나름 내가 나에게 좋은 평도 하면서 만족을 했었다.
그러니까 있는 머리카락을 모두 모아서 묶고 있으면
풀고 있을 때 보다 엄청 많이 활력이 있어 보인다.
나는 잠이 오라고 불을 끄고 누워서 수도구를 한다.
잡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는 수도구가 안 풀리게 되면
이 고비를 넘기면 내가 이기는 거라고 용을 쓰다가
그래도 안되면 힘들어 덮어 버리고 눈을 감는다.
이런 경우에는 쉽게 잠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데
어쩌다 수도구가 너무 잘 풀리면 욕심이 생겨서
우쭐대면서 계속하다가 잠잘 때를 놓치게 된다.
이 날도 불을 꺼 놓고 누워서 수도구를 하고 있는데
아들이 전화를 해서 얼른 받으면서 일어나 앉았다.
연구실 쪽으로 걸으면서 하는 전화이니까 하면서
잠시면 된다고 누웠던 머리카락 그대로 앉았는데
아들이 영상통화로 바꾸고 나는 놀래서 불을 켰다.
내려야 하는 역을 지나쳐서 다음 역에서 내렸다며
걷다가 김밥집을 발견했다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밝아진 불 덕분에 내가 잘 보였는지
눈을 크게 뜨고는 진짜 못생겼다며 한마디를 하고
연구실에 다 왔다면서 이야기를 마쳤는데
무엇을 들었는지 멍한 기분에 얼른 불을 껐다.
아무튼 잘 자고 일어나 거울을 보면서
왜 갑자기 못생겨져 보였을까 하고 생각해 봤다.
어젯밤의 내 상태와 지금의 내 상태는 같은데 하며
평소의 나와 다른 점을 찾으니 머리를 풀고 있었고
거의 생머리가 된 머리카락이 문제였던 것 같았다.
작년 6월에 파마를 했었으니...
별 일도 없는데 파마를 해야 하는 건가 하면서
며칠 고민을 하다가 하자고 마음먹고 움직였다.
파마를 하고 미장원을 나서면서 나는 웃었다.
버스를 타고 왔던 그 내가 아니라는 것에서
히죽거려 가면서 주변을 휘젓고 다녔다.
내가 봐도 거울에 비친 내가 멋져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