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들에게 주지 못한 것
일본에서 한국 엄마가 안달하면서 한국말을 가르쳤다.
절대로 일본말만 하는 한국인은 만들 수 없다는 각오도 있고
일본어 발음을 먼저 배우면 한국어 발음이 힘들다는 것에서
아이들에게 하는 말은 무조건 한국말로 하는 것을 고집했다.
그때 나는 일본어가 아주 편해졌을 때였는데
일본어를 하는 일본인들이 한국말 발음이 안 되는 것에서
그런 일본인들이 영어 발음도 이상하다는 것에서
내 아이들은 한국어를 먼저 해야 한다고 엄청 노력을 했었다.
내 생각은 그랬다.
아이가 유치원이라는 곳을 다니기 시작하면 일본어 천지인데
그전에 유창한 한국어는 아니더라도 발음은 시원하게 하도록
고함을 지르게 하거나 탁한 발음은 더 많이 하도록 유도했었다.
정말 아이는 유치원에 다니면서 엄청난 일본어를 습득했는데
그럼 그럴수록 난 집에서 한국말로 아이들과 대화를 했었다.
일본 학교에 가게 되는 것을 알면서도 한글만 가르치면서
일본어는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어서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이들을 한국에 데리고 가려다가 미국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국 갈 준비만 하다가 아무 준비도 없이 미국에 가게 되었는데
그때까지도 나는 한국인이니까 하면서 한국어를 가르쳤고
집 밖에서 아이들은 일본어를 배웠는데 미국에 간 것이다.
영어를 거의 모르는 아이들이 미국 학교에서 헤매고 있는데
그때 미국의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워보자고 데려온 부모들은
아이들을 한국인 학원에 보내면서 가정교사도 고용했는데
나는 경제적인 여유도 없었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몰랐다.
나는 잘 버티면 영어는 하게 되겠지 하는 생각이었지만
주변의 한국인 엄마나 일본인 엄마들은 내가 한심한지
왜 한국 드라마를 보냐고 그럼 영어가 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에서 바로 미국으로 온 엄마들은 엄청 강렬했다.
철저하게 영어만을 위해서 좋은 대학을 위해 전진했는데
어설픈 한국어를 하는 내 아이들은 영어를 못했던 탓에
영어보다 한국어로 떠드는 친구들과 어울려 지냈다.
덕분에 미국에 가서 완벽에 가까운 한국 발음이 되었는데
그 대신 영어가 늦는다고 조언을 해 주는 엄마들이 많았다.
그런데 내 생각은 지금 막 사춘기가 시작되는 아이들이
숨은 쉴 수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막지 않고
지나간 일본 어린이 잡지도 얻어다 보게 해 주고
한국 드라마나 오락프로도 같이 보면서 떠들었다.
미국 생활이 조금 자리를 잡고 살만해지니까
외국인 부모를 위한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지역에 온 자녀를 가진 부모들을 위한 것이었는데
머리 희끗한 백인 중년의 여자 선생님이 해 줬던 말에
이런 이야기를 늦지 않게 들어서 다행이라고 고마워했다.
그 선생님은 아주 쉬운 영어로 천천히 말해 줬는데
아이들에게 영어를 빨리 익히라고 다그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영어를 위해서 영어책만 보라고 하는 것도 안된다고
생각을 많이 해 보자고 책을 읽는데 그게 모르는 영어라면
머리가 쉽게 움직여지지 않아 생각이 좁아진다고 했다.
상상이나 공상등을 마구마구 쏟아 내야 하는 나이니까
편안한 자국의 언어로 된 책이나 만화책도 좋다면서
머리가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억제를 하지 말라고 했다.
불편한 영어로 생각이 굳어지면 영어가 능숙해져도
아이는 그걸 이용할 능력이 줄어져 버린다고 했었다.
이 말을 들었을 때의 그 교실에 선생님이 아직도 생생한데
인생 선배 같은 인상을 한 분이 차분하게 설명을 해서 그런지
맞는 말이라고 납득이 되는 말이어서 머리에 꽉 박혀버렸다.
어릴 적 일본에서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강요하지 않았다면
아이들이 좀 더 꿈을 크게 키울 수 있는 머리가 되지 않았을지
아직도 간혹 한국말로 묻는 질문에 일본어로 대답하는 아이들은
어느 쪽을 모국어처럼 생각하면서 쓰는 것인지 많이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