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함을 느끼라고 그러는지
4월 25일 지금도 생각하면 끔찍한데
평소처럼 일어나 노트북을 열어 전원 스위치를 눌렀는데 반응이 없었다.
놀래서 다시 전원 스위치를 눌렀는데도 조용한 것에 겁이 났다.
3월 13일에도 이런 일이 있어서 혼이 한번 몸에서 빠져나갔다가 왔는데
이럴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ipad로 유튜브에서 찾아 시도를 했다.
Shift + Control + Option + 전원 버튼을 정말 정성스럽게 누르면서
켜질 때 나는 소리가 들리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꿈쩍을 안 했다.
할 수 없이 아들을 iphone으로 불러 이 긴급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아들이 뭔가 했냐고 물어서 업데이트를 하라고 하기에 했다고 하니
그 사이 찾아봤는지 아까 내가 눌렀던 스위치를 그대로 하라고 해서
내가 이제까지 하고 너를 부른 거라고 하니 다시 해 보라고 했다.
여러 번 해 보는데 아들이 Shift를 오른쪽 키로 해 보라고 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길게 누르라고 했던 전원 스위치를 누르면서
이대로 열리지 않으면 어떤 방법이 있는지 물었더니 없다고 하면서
애플 매장에 가라고 하는데 눌렀던 손가락을 떼는 순간 소리가 들렸다.
이야기를 하다가 들려온 맥북 시동 소리가 얼마나 반가운지
아들도 보고 있는데 열렸다고 온 세상을 다 가진 기분으로 떠들었다.
그런데 스스로 해결을 해 보려고 찾아서 내가 했을 때엔 안되더니
아들 앞에서 되는 것은 뭔지 아들을 불러야 해결이 되는구나 했다.
쓰기 시작한 컴퓨터는 매킨토시 클래식(Macintosh Classic)였다.
미국에 가서는 Power Mac G4를 썼는데 예뻐서 아직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이 노트북을 원할 때 학생증이 있으면 할인이 된다고 해서
계속해서 애플 회사의 것을 썼는데 그래서 휴대폰도 아이폰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써 오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어 당황했는데
아들은 타임머신(백업 솔루션)을 언제 했냐며 얼른 해 두라고 했다.
4월 25일 그러니까 백업을 3월 13일에 하고는 안 했는데
다시 노트북은 반응이 없어 전에 했던 방법을 해 보는데도
정말 깨끗하게 써서 반질거리는 노트북은 차갑기만 했다.
또 아들을 부를 수는 없다고 알아서 혼자 해결을 하자고
애플 매장을 찾아 가까운 이마트로 걸어가면서 생각을 했다.
이 노트북은 이제 4년 반이 지났는데 정 안되면 바꾸자고 마음먹고
도착한 매장은 서비스가 안된다고 백화점에 있는 매장에 가라고 했다.
버스를 선호해서 지하철은 잘 안 타는데 빨리 가자고 지하철을 타고
백화점 지하에 도착해서 매장에 갔더니 예약을 했냐고 한다.
방문으로는 40분을 기다리라고 하는데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서
백화점인데도 그냥 애플 매장 한쪽 벽에 있는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드디어 순서가 와서 노트북을 열어 보이면서 사정 이야기를 했는데
이 직원은 충전 선을 꼽고 내가 했던 그 방법으로 4개의 키를 눌렀다.
그걸 두 번 해 보더니 뜯어야 할 것 같다며 기본요금이 백만 원이라고
열어 봐서 수리가 되는 방향으로 진행을 하면 더 많이 들 수도 있다며
그때엔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 모두 지워진다고 했다.
갑자기 여러 가지 상황이 한꺼번에 들어와 머릿속 정리가 안되어
전원하나 가능하게 하는 일이 이렇게 복잡하냐고 비용이 드냐며
저장되어 있는 것은 꼭 다 지워지는 거냐고 하니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제 백업을 했냐고 묻는데 몸이 굳어져 버렸다.
한 달 이상의 시간에 내가 했던 일들을 찾아내는데
나는 왜 그동안 열심히 살았는지 그것들을 잃을 수는 없다고
다른 방법이 없냐고 애원을 하니 복구하는 곳이 있다고 하는데
복구하는 말과 동시에 복제라는 단어도 떠오르고 거부감이 들었다.
복제가 될 수도 있는 위험에 수리가 완전하다는 것도 아니고
내 노트북이 3백만 원이었는데 백만 원을 들여서 수리하는 것에
한 달 반의 기록은 포기하고 차라리 새것으로 사는 것은 어떤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일단 집으로 가자고 다시 지하철을 탔다.
집에 와 보니 내가 아직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충격을 받아서 그런지
체념이라는 것이 생겨 어떤 상황도 받아들여질 것 같아졌다.
이 상황을 내가 우선 마음의 정리를 하고 아들에게 말하자고
내가 노트북을 바꾼다면 다 같이 산 아이들의 것도 바꿔야 하는지
혼자만 새것으로 하더라도 아이들에게는 물어보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까지 ipad로 매일 출근 도장 찍듯이 한 공부도 하고
매일 드라마도 찾아보고 나에 대한 매일의 기록도 해 두었다.
차분한 마음으로 아들이 자기 전에 불러서 어제 일을 이야기하는데
아들이 한 번 더 해 보자며 노트북 자판 shift와 전원을 누르라고 한다.
오른쪽과 왼쪽의 shift와 전원을 번갈아 눌러보기고 하고
전에 했던 4개의 키를 동시에 누르는 것을 했는데 반응이 없었다.
다시 한번 더 눌러보라고 해서 4개를 동시에 누르다가 손을 떼면서
거봐 정말 반응이 없다니까 하는데 시동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시동한다고 울리는 소리가 이렇게 웅장할 수가 있다니 황홀했다.
아들이 있어서 또 가능하게 된 것인지 아들에게 이게 뭐냐고
너는 네가 이런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냐고 하면서
자꾸 해 보자고 했던 말이 이런 결과를 가지고 왔다고 했다.
하루와 반나절 나는 충격과 포기와 결심을 하느라고 진을 뺐는데
노트북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멀쩡하게 켜지고 잘 움직였다.
아들이 얼른 백업도 해 두고 잘 때도 노트북을 켜 두라고 해서
아직도 몇 년은 더 쓸 수 있게 보이는 것을 잘 유지시키자고
노트북의 밝기를 어둡게 해 두고 자는 것으로 2주일을 지냈다.
아침이면 노트북의 시동 소리를 들었던 습관이 사라지니
잘못해서 전원스위치를 누르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조심했는데
달라진 이 습관도 그렇지만 언제까지 노트북을 켜 두어야 하는지
이것도 아닌 것 같다고 마음을 정하자고 날짜를 정해 버렸다.
연휴가 끝나고 난 월요일 5월 12일에는 전원을 꺼 보자고
일어나서 바로 타임머신을 해 두고 손을 떨면서 전원을 껐다.
그리고 잠시 후에 전원을 켰는데 웅장한 소리가 들려오고
모든 소원이 다 이루어진 듯한 기분으로 만세를 불렀다.
12일이 오기까지 마음은 오락가락하면서 무거웠다.
그냥 살지 하다가 용기를 내 보자고 이것도 도전이라고
무심하게 눌렀던 전원 스위치도 이런 감각이었구나 하는데
다시 열린 화면이 왠지 더 깨끗하니 모든 게 선명해 보이는 게
노트북 자체가 새것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 선물을 받았구나 한다.
5월 13일 아침 전원 스위치를 눌러 노트북의 화면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