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받아들여졌다.
친구가 늙어가는 것을 인정해야겠다고 하는 말을 듣고 알았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늙어 가고 있었다는 것을...
그런데 이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 건지
이게 다 내가 운이 좋아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노안이 엄청 빨리 왔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 숙제를 봐주다가 노안이 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했는데 갑갑하다는 생각보다는
안 보이던 것이 확실하게 보이는 것에 놀라워 고마워했던 것 같다.
흰 머리카락은 미국 생활 2년 차에 갑자기 많아졌다.
그것도 앞머리만 하얗게 되어 다들 멋있다고 하는 말에 즐겼었다.
너무 많은 스트레스가 있었는지 흰머리와 같이 원형 탈모도 생겼는데
반질거리는 탈모 자국에 아이들에게 보여주면서 신기해했었다.
거기까지는 확실하게 기억이 나는데 걱정도 하지 않았었는지
언제 다시 머리가 나와 빠졌던 자리가 사라졌는지는 기억에 없다.
흰머리가 앞쪽으로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다들 염색을 권했었는데 나는 하나의 특징으로 좋다는 생각이었다.
이마 위로 생긴 흰머리카락은 내가 많이 노력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고
노안이 조금 빨리 온 것은 너무 눈이 좋았던 것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했다.
일본 생활에서도 미국 생활에서도 나는 얼음 위를 걷는 기분으로 살아서
내 모습이 어떤지에 대한 느낌은 사치 같았는지 별로 기억나는 게 없는데
그게 도리어 좋았던 것인지 변해가는 모습이 늙어간다는 것인지 몰랐다.
부모님의 일로 부산 살이를 시작하고도 정신없이 움직여야 해서 몰랐고
그 일이 끝날 무렵에는 아들이 와서 지내서 나는 나를 모르고 지냈었다.
이래서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었는지 늙어간다는 느낌을 몰랐는데
어느 날 정말 신기하게 늙었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고모가 잘 지냈냐고 묻기에 엉치뼈가 아픈 것 같더니 다리를 타고 내려와
발가락도 아픈 것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며칠 사이에 싹 사라졌다고 하니
고모가 너도 늙어 가고 있구나 하셨다.
어떤 심한 운동도 하지 않았던 다리가 그런 것도 이상했는데
며칠 만에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져 버린 것이 늙어 가는 거라니...
자세히 보면 피부는 정말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 잘 알려 주고 있으며
움직임은 예전 팔팔했을 때와 비교하면 많이 부실해졌기는 한데
많이 열심히 썼던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건실하다고 생각한다.
부실해지는 허리와 무릎에는 이제는 쉬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하면서
이게 다 나의 멍한 생각 탓인지 조금도 늙어가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부터 자꾸 늙어 간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되더니
올해는 모든 이야기가 늙어가는 것에 집중된 것 같아 아쉬웠다.
당연하게 늙어 가게 되는 건데 구태어 입으로 그 말을 해야 하는지 하는
그러지 않아도 어제와 오늘은 다르다고 시간은 계속 지나가고 있는데
인식을 하면서 인정까지 해야 하는 일이었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삼 내 이상한 생각 구조가 고마워졌다.
공부하고 성적을 내야 하는 머리로는 많이 버거웠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서는 충격을 덜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대로 그냥 나 인 것에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