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요리 솜씨
한국 음식점도 별로 없고 재료도 사기가 힘든 일본에서 살다가
미국에 와서 제대로 된 한국 맛의 한국 음식으로 살게 되었는데
한국인 가정에 초대되어 처음으로 먹어 본 삼겹살 맛에 푹 빠져버렸다.
이제까지 돼지고기는 사 먹어 본 적이 없어 몰랐던 아이들은
그때부터 샤부샤부도 돼지고기로 돼지고기 팬이 되었다.
한국 음식을 이제는 자신 있게... 적어도 먹을 수 있게는 만들지만
미국에 와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한국음식은 나도 먹기가 힘들 정도였는데
음식을 하는 기초지식이 너무 모자랐다는 것을 50이 되어 깨달았다.
적어도 나물을 무칠 때엔 양념을 만들어 놓고 한 번에 버무려야 한다던지
찌개에도 먼저 넣어야 하는 야채와 나중에 넣어야 하는 야채가 있다는 것
데치는 것과 삶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고 나니
음식 만드는 일이 내 손안에 들어온 것 같이 자신이 생겨
며칠 전에 불닭이라는 것을 인터넷으로 찾아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아이들은 얼마나 맛있었는지 바닥까지 싹 긁어먹고는
날 보고 식당을 차려도 되겠다며 극 칭찬을 했었다.
그동안 얼마나 맛없는 것을 먹였으면 이런 반응을 할까 하는데...
이렇게 다 득도한 것이 몇 년 안된다.
처음엔 카레를 정말 맛있게 해서 나도 내 솜씨에 놀랬는데
요리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구나 하고 느끼기 시작하니
설거지하는 것조차도 간단하게 편하게 생각되었다.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하는 말이 이런 건지...
일본에서 살 때엔 거의 일본식으로 먹었다.
그러니까 음식이라는 것을 내 손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 일본이어서
일본 음식은 음식을 잘하는 일본인 친구에게서 제대로 배웠는데
이 친구가 저녁 한 끼에서 메인으로 등장하는 요리는 거의 해 주어
아이들은 굴후라이든지 ちらし寿司 같은 것을 먹을 때면
그 친구의 맛을 떠올리면서 엄마의 손맛을 대신해서 이야기했다.
한국 음식은 열심히 먹기만 했지 해 본 적이 없어 엉망이었다.
사실은 엉터리라는 것도 50이 넘어서 알게 되었지만
그동안 일본에서 한국 음식이라고 만들어 친구들에게 선을 보이면
맛이 없다고 한 적이 없어서 내가 한 것에 의심을 하지 않았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왜 재료를 준비해 두고 시작을 해야 하는지
숙성이라는 것이 왜 필요한지 알게 되어 요리라는 오묘한 것을 느끼고 있다.
미국에 와 보니 한국 음식 재료가 마음만 먹으면 살 수 있다는 것과
한국 음식점이 다양하게 있고 맛도 한국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에
우리 셋은 여기가 천국이라며 열심히 사다 먹었는데
한국 생활을 조금 했더니 이곳의 음식도 완전한 한국 맛은 아니란 걸 알았다.
미국에서 사는 동안 반찬은 거의 사다가 접시에 담아내는 것이 내 역할이었는데
색에 맞춰서 그릇에 어울리게 잘 담아 차려 놓으면 다들 잘 먹어 주었다.
내가 요리한 것은 나도 먹지 못하니 당연히 아이들에게도 줄 수 없었고
미국에 있는 한국 마켓에서 만들어 놓은 반찬이나 김치의 가짓수가 많아서
솜씨 부족으로 재료를 버리는 것보단 사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생각이었다.
아들은 이런 나의 음식에 대해서
엄마의 손맛은 OO마켓의 맛이라며 대 놓고 이야기하고
그럼 난 당당하게 어떤 마켓의 음식이 맛있는지 골라내어 사 온 것이
엄마의 정성이고 그것이 엄마의 손맛이라고 괴변을 늘어놓았었다.
정말 요리 솜씨가 좋은 한국의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는 자식들을 위해서 좋은 재료로 골고루 영양을 섭취하게 하며
가능한 집밥을 먹어야 한다며 집 밖의 음식은 믿을 수 없다고 고집했는데
아이들이 어릴 적에 이런 말을 듣고 엄마로서 엄청난 자괴감에 갈등했지만
집에 있던 사람(내과의)에게 물었더니 너무 깨끗한 것도 나쁘다며
적당한 균은 조금씩 먹어두면 면역이 생겨 웬만한 것에 배탈이 안 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난 재료가 중국산이라는 말에도 MSG가 들어 있다고 해도
그저 아이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생각에 신경 쓰지 않았다.
내 나름 위생적이면서 맛도 있고 가격도 넉넉한 것을 골라 사다 먹었는데
덕분에 아이들은 반찬 투정도 없이 배가 탈이 난 적도 없다.
거기다가 반찬의 가짓수가 적은 일본식에 길들여져 있는데
솜씨가 없는 엄마 탓에 그저 찌개나 볶음 등 메인이 하나만 있으면 되어
어쩌다 반찬이 많은 식당에 가면 아이들은 잔치하는 날로 행복하다고 했다.
엄마의 손맛은 아이가 커서 느끼는 향수 같은 거라고 하는데
어쩌다 엄마의 손맛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아들은 나를 놀린다.
엄마의 손맛 하면 우리는 마트의 간판이 생각나겠네 하면서...